연극/2016~2017

160624 왕복서간 리딩 후기

LUN 2016. 6. 24. 23:53







왕복서간 책에서 이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이야기들보다 먼 공간에서, 

정해진 두 사람이 용서나 진실이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를 위해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한다는 점. 

그리고 온전하게 이해하고, 캐릭터를 행동하게 할 힘을 주는 이야기이기에 좋아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무대에서 보니까 마음이 정말 이상했다. 



연출의 무대가 남태평양의 바다이고 

남십자성이 보이는 하늘이고 

관객들이 있는 공간이 된다는 말에 

공연 전부터 마음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원작의 팬으로서 약간의 근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생각했던 것보다 더 원작에 가깝게 표현되어 있었다. 



편지의 형식을 가지고 있는 원작을 훼손(이게 맞나)하지 않는 선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는 것도 깔끔해서 좋았다. 


대본으로만 읽고 내가 상상하다 보니 순간의 내 기억이 더 과장되어 있을 수 있으나 


폭력을 표현하는 부분에서 마리코가 겪었던, 봤던 일들이 

대본상에서 너무 적나라하게 각색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이게 본 공으로 오게 된다면 형부의 폭력이나 아베의 폭력의 수위를 좀 낮춰주셨으면.. 



당장 언제 올라올지 모른다는 아쉽고 속상한 감정들이 뒤섞였다. 




몇 걸음만 걸으면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는데, 

세상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것만 같고. 


마지막 편지를 쓰는 준이치의 감정표현이 너무 궁금해서 일부러 준이치의 앞에 앉았다. 



처음에 편지 쓸 때 정면보고 마리코를 부르다가 몇 번 눈이 마주쳤는데, 

자꾸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편지일지도 몰라, 하면서 

내내 거짓으로 편지를 쓰는 준이치가 가엽고 원망스럽고 또 대단해 보였다. 



사람을 죽인 죄는 0이 될 수 없음을, 그러나 그렇게 해서라도 지키고 싶은 누군가가 있었음을. 


간절함을 담아 진실만을 적는 마지막 편지 내내 

과거와 현실 속에서 고열에 시달리던 원작 속 준이치가 내 앞에 있었다. 



준이치, 하고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드는 눈빛이 내 생각대로여서.. 내적기립. 



바다를 건너온 마리코의 목소리가 준이치에게 닿는 그 아름다운 순간을. 


마리코의 눈을 닮고 싶었던 준이치의 눈을 마리코가 바라보던 두 사람만의 공간을. 

영영 잊지 못할 것 같다. 



객석에서 모든 배우들이 들어갈 때까지 박수쳐서 왈칵했다. 


리딩을 위해 시간 내고 연습해 준 배우들도, 용기 내 준 제작사도, 

그리고 함께한 관객들에게도 너무 고마웠던 순간. 



나레이터 읽어준 손사마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약간 깜짝. 

어린 마리코랑 가즈키가 연기를 정말 잘해서 과거에 조금 더 몰입할뻔했던 건 안자랑. 


내가 상상했던 야스타카의 이미지와 비슷해서 좀 놀랐고, 

리딩인데도 생각보다 감정선들이 깊어서 또 놀람. 




당장 본 공연으로 만날 수는 없겠지만... 

클라우드 펀딩이라도 하고 싶어졌다. 

본공 꼭 올려주세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