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008 팬레터 낮공 후기
막이 시작할 때 1막, 2막 모두 시대적 배경을 설명한다.
1막은 시대적 배경을 녹여내고,
히카루가 왜 뮤즈인지, 극의 타이틀이기도 한 '뮤즈에게 보내는 편지'가 왜 되는 건지를 1막 내내 설명하면서
인물들의 관계를 말해주려다가 지루해졌다.
불량선인인 이윤은 능글맞은 게 아니라
진실을 알고 있지만, 세훈을 속이기 위해 약간은 화가 난 것 같은 캐릭터이길 바랐는데
1막에서는 현재와 과거 모두에서 그냥 능글능글 한 느낌이라 아쉬웠다.
2막에서는 칠인회가 위기를 맞게 되는 투서를 설명하면서
1막보다 더 자연스럽게 시대적 배경을 녹였고,
2막에서의 이윤은 해진을 이해한 사람으로서 자연스러웠다.
세훈이가 자신의 정체가 들킬까 급급해서 예민해지니까
2막 느낌은 스릴러마냥 빨리 흘러가서 2막은 20분인 느낌이었다.
히카루가 춤추듯 가볍게 움직여야 하는 동선과 동작이 많다 보니 숨이 차는 경우가 있고,
음향도 안 좋으니 안 들릴 때가 많아서 답답했다.
그리고 원고는 왜 그렇게 자꾸 뿌리고 던지는지.
쇼케이스때의 단정된 느낌은 사라져
어디서 본 무언가가 자꾸 생각나게 많은 살이 붙여져서 극이 지루해졌다.
넘버도 더 극적으로, 가득 찬 느낌으로 편곡된 것 같은데 어수선해졌고.
2막에서 책상을 다 빼버리니까 가뜩이나 휑한 무대가 더 비어 보이고.
* 히카루와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히카루는 2막에 해진과 세훈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가면서 소설에 집착한다.
'최고의 작품'을 이야기하는 히카루를 세훈이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고,
빛나고 아름다운 것을 위해 모든 걸 거는 히카루와 해진이 이상해 보일 지경.
자신의 본체인 세훈을 압박하고 무시하는 이유는 이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에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글로 인해 생명을 얻은 히카루에게는 영원히 글로 기억되는 게 당연한 수순이고,
편지 속에서만 존재하는 히카루에게는 편지로 인해 영원히 빛나는 아벨라르와 엘로이즈가 동경하는 대상이자 답습한 것일 거라 생각한다.
편지 속에만 존재했다면 해진과 세훈의 기억 속에만 남게 되었을 텐데,
해진으로 인해 이미 문인으로 등단한 히카루에게는 '존재'하는 것 이상의 열망이 생겼을 것이다.
세훈이 가지고 있던 작가가 되고자 하던 순수했던 열망.
그것은 히카루가 글을 쓰는 본체가 되면서 해진의 마음을 오롯이 얻게 되면서
그의 글과 함께한다면 편지 속이 아닌 작가가 되어 사람들에게 각인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 열망까지 원했던 게 아닐까.
그런데 2막에 가면 아벨라르와 엘로이즈는 완전 잊혀지고 생각나지 않아서 관객들마저도 히카루의 행동이 납득되지 않고.
서간으로만 사랑을 표현하고, 오래오래 기억되는 이들을 동경하고 사랑의 여러 모습을 알게 되길 원한다면서
이 이야기를 왜 단 한 번 넘버에만 녹여낸 것인지.
히카루의 2막의 모든 행동이 정당성을 얻으려면 이 부분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 비극을 맞이할 연인이여
히카루의 소멸, 즉 죽음은 해진과 세훈에게는 사형선고였다.
히카루가 했던 행동들은 세훈을 칠인회에게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세훈이 유일하게 존재할 수 있던 세훈의 세계를 앗아가고,
히카루는 자신 없이는 영원히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영원 같은 저주를 퍼부었다.
그 저주에 세훈은 초조해졌고 불안해졌다.
세훈은 섬세하지만 서툰 자신의 감정을 해진에게 직접 전한다.
글을 씀으로 생명을 연장하던 해진의 생에 진실이 개입하면서 해진은 모든 것을 잃었다.
해진이 할 수 있는 것은 글을 쓰는 것뿐이었다.
그의 육체는 오로지 그 열망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사람을 살게 하고 버티게 하는 문장을 쓴 해진은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낮이나 밤이나 어두운데 유일하게 남은 길.
글을 쓰는 그 길은 뮤즈를 넘어서서 사람을 살게 하는 유일한 힘이었다.
히카루는 그에게 펜이었고, 빛이었고, 구원이었다.
소설 결말을, 인간의 결말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알고 있는 이야기를 향해 달려가는 해진을 이해하지 못하는 윤.
그런 그를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만 이해할 방법으로 설득하는 해진.
세훈은 자신이 해진이 자신 때문에 더 빨리 죽었을 거라고 말하지만,
윤은 그를 위로하듯 해진의 생명을 연장한 것이기도 하다고 말해줄 때 세훈은 아주 약간의 온기와 위로를 얻은 것 같았다.
*네 손 좀 봐 피 투성이야.
히카루가 말하는 피는 비교일까
아니면 진짜로 건강을 잃고 있는 해진의 피를 말하는 걸까
아니면 자신이 세훈에 의해 사라지게 될 것을 알고 말하는 걸까.
손을 비추는 빨간 핀 조명에 약간 놀랐지만, 약간의 비유같기도 하고.
자신의 본체인 세훈을 궁지로 몰아가는 히카루의 심리가 약간 궁금해졌다.
* 2월에 했던 글로컬 쇼케이스와 달라진 점 중 아쉬운 것
직관적인 무대바닥 원고지.
그 안에서만 움직이던 히카루가 그 칸 속만 움직이다가 그 후에 거울씬 이후로 칸과 줄을 벗어나 자유롭게 움직였었다.
1막과 2막으로 나뉘면서 1막에서는 원고지 조명이 무대를 채우고,
히카루가 해진과 세훈의 안에서 살아난 2막에서는 원고지 조명이 끝 무렵에 나온다.
유고집
원래 미츠코시 백화점 옥상에서 커피를 마시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든 세훈이었던 것 같은데,
뒤에 실루엣으로 나오는 사람들(..)에 극과의 이질감이 느껴졌다.
쇼케이스 버전의 살아 숨 쉬는 사람들 사이의 세훈이 더 생명력을 얻은 것 같아 좋았다.
이제는 이방인이 아니라 그 사람들과 같아 보이는 세훈이
마지막에 해진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때는 그때로 돌아가는 것 같아서 더 순수해 보였다.
히카루가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던 쇼케가 더 좋았다.
여성역시 사회활동을 하고, 가십거리에 열광할 줄 안다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히카루가 극에서는 또 다른, 육체를 가지고 있는 육체가 되는 것 같았다.
본공에서 히카루가 남성 정장을 입고 있는 건, 세훈 그 자체 같은 느낌이었다.
거짓말이 아니야
히카루가 생명을 얻던 넘버라서 더 좋아했고,
그림자의 실루엣과 같은 안무로 자신과 같은 인물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서 더 좋아했고.
방안에 갇혀 벽 뒤로만 존재하던 히카루가 세훈의 설정으로 문을 열고 나올 때
정말 현실이 되는 것 같았는데..
내가 죽었을 때
본공연으로 와서 세훈이 히카루의 캐릭터를 설정할 때(히카루가 살아날 때) 위에서 내려오던 액자틀들이 쇼케이스때에는
편지를 읽는 세훈의 위로 추억처럼, 기억처럼 다 내려왔었고,
캐비닛에 원고들과 해진이 히카루에게 주고자 했던 꽃 한 송이가 빠진 게 사실 가장 충격이었다.
세훈이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예민하고, 이 넘버마저 강하게 소화하는 게 아쉬웠고.
넘버 가사도 '여전히 찬란하게 아름다웠다 → 그래도 찬란하게 아름다웠다' 로 바뀌었는데
서서 부르는 게 아니라 쇼케이스 때는 글을 쓰면서, 그때를 회상하며
여전히 지금도 아름답다고 추억하는 세훈이 더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