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팬레터

161016 팬레터 밤공 후기

LUN 2016. 10. 17. 23:11

161016 팬레터 밤공 이규형 문성일 배두훈 소정화 







161016 팬레터 밤 



오른손의 상흔 


오른손으로 찻잔을 잡으려다 왼손으로 찻잔을 들고 아마도 잠깐의 여유를 즐겼을 세훈. 

히카루 라는 이름에 그는 손등을 감싼다. 


보이지 않았지만, 그 어떤 상처보다 클 세훈의 오른손 등 위의 상흔.


사람들이 유희 거리로 둘의 관계를 수군거릴 때는 차갑게 식어 얼음 같았을 테고, 

윤에게서 히카루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데인듯 뜨겁게 열이 올랐으리라. 


구원과도 같았을, 해진과 함께 글을 쓸 수 있었던 시간. 


해진을 살리기 위해선 

자신이 괴로울 때 손을 내밀던 '글'과 '히카루' 두 가지 모두를 버려야만 했다. 

자신을 버티게 했던 건 해진의 글이었고, 해진과 함께 하기 위해 선택한 건 히카루 였으니. 

그 둘이 없는 건 세훈에게는 필경 지옥이었을 텐데. 


스스로 지옥에 떨어지기 위해 선택했던 펜촉의 끝은 너무나 날카로웠다. 


오래도록 몸과 마음에 남아버린 상흔. 








뮤즈에게 보내는 편지. 




사실 첫공이 끝난 직후부터 줄곧 세훈의 뮤즈가 히카루인걸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리플렛에 쓰여 있는 '뮤즈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말은 줄곧 해진의 시점으로만 보였다. 

맨 마지막 순간, 다시 찾아온 히카루는 뮤즈나 영감에 가까운 존재라 

그렇게 밝게 웃었겠지,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해진의 편지는 뮤즈인 세훈에게 보내는 편지였고 


세훈의 뮤즈는 해진이었다. 


뮤즈를 위해, 

동경하던 선생님과 문학적 동지가 되기 위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히카루를 만들어냈으니까. 



세기에 남을 작품을 쓰는 거죠. 

선생님과 제가. 



세훈이가 이렇게 직접 이야기했는데, 왜 놓치고 갔던 걸까. 















히카루 



글만은 계속해서 남도록 




아무도 모른다에서 쏘카루 마이크 나가서 세훈의 목소리를 지나 

들려오는 쏘카루의 '그는 날 알아볼 거야'라는 목소리가 소름 끼치게 들리기 시작했고. 


글자 그대로에서 '난 네 편이야'라고 말하던 쏘카루는 

뮤즈 - 섬세한 팬레터 로 넘버가 지나면서 자신의 욕망(!)을 끝없이 펼쳐냈다. 


첫공을 보고 길고 긴 후기를 썼었는데.... 




편지 속에만 존재했다면 해진과 세훈의 기억 속에만 남게 되었을 텐데, 

해진으로 인해 이미 문인으로 등단한 히카루에게는 '존재'하는 것 이상의 열망이 생겼을 것이다. 


세훈이 가지고 있던 작가가 되고자 하던 순수했던 열망. 


그것은 히카루가 글을 쓰는 본체가 되면서 해진의 마음을 오롯이 얻게 되고. 

그의 글과 함께한다면 

편지 속이 아닌 작가가 되어 사람들에게 각인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 열망까지 원했던 게 아닐까. 




섬세한 팬레터에서 해진의 편지를 입 모양으로 함께 읽는 히카루를 보는데 

히카루가 가지고 있는 열망과 욕망은 내가 후기에 길고 길게 쓴 저것이었을 거고, 


2막까지 그 감정을 끌고 가서 더 화려해지고 강해진 히카루. 

그 열망과 욕망을 벗겨보면 세훈이 가지고 있는 '세기에 남을 작품'이라는 바닥이 나오는 감정선을 보고 입을 딱 벌리고 공연을 보고 있었다. 


변화된 히카루가 가져온 캐릭터가 가진 설득력. 





*





당신을 이해하는 사람 나뿐이야 우리 사이 

다른 사람은 필요 없어 



그녀의 탄생과 죽음에서부터 늘 세훈과 해진의 사이에는 히카루가 있었다. 

시선 언저리에 걸려있는 게 아니라 해진은 히카루만을 보고. 

세훈은 히카루의 등 뒤에서, 그녀를 통해 해진을 보는데. 


섬세한 팬레터속 세훈의 저 목소리가 유독 더 아프게 들렸다. 

세훈이 말하는 다른 사람은 칠인회 멤버들이 아니라 사실은 히카루 아니었을까. 



내가 죽었을 때. 


종이를 구겼다가, 다시 펴서 가슴에 가져가는 세훈을 보며 겨우 멈췄던 눈물이 또 흘렀다. 


아프고, 고통스럽고, 여전히 견디기 힘들지만. 

아직도 그 아픔의 한가운데에 있지만, 글을 쓰며 그 아픔을 직면했고. 

이제는 가지고 있던 죄책감(!)과 아픔을 아주 조금은 이해하고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어젯밤, 공연이 끝나고 암전이 되자마자 터지던 박수 소리. 

감정이 왈칵하고 쏟아졌다. 



세훈의 죄책감에 대해 글을 써 보고 싶은데, 아직은 세훈이에게 많이 이입되어있는지. 

거울 - 고백 - 해진의 편지 - 내가 죽었을 때 

이 넘버 내내 계속 눈물이 흐르고.. 공연 기간 말미에는 쓸 수 있을까. 



8일, 9일 봤던 팬레터와는 또 다른 느낌의 공연이라서 만감이 교차했다. 


조악한 조명은 바뀌지 않았고, 칠인회는 여전히 병풍인데(..) 

모든 인물의 캐릭터가 자기 색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어서 짧은 공연 기간이 더 아쉽게 느껴졌다. 


이제는 편지를 쓰는 이와 받는 이가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세훈의 봄을 더 자주 만나고 싶어졌다. 




그리고 너무나 예뻤던 히카루와 세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