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프라이드

170325 프라이드 낮공 후기

LUN 2017. 3. 26. 01:59






배수빈 장율 김지현 양승리 






'당신이 당신에게 닿을 때까지' 안내멘트를 듣는 순간 


초, 재연의 프라이드는 나에게는 실비아의 눈물 섞인 위로에, 

진짜로 내 삶이 언젠가는 괜찮아 질 거라 말해주는 다정한 목소리를 들려주는 그 극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왈칵했는데 

극 전반적으로 혐오와 차별이 중점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이 작품 자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이번에 처음 느낀 걸까 싶기도 했다.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는 극.

프라이드 퍼레이드의 역사를 이야기하기 위한 극. 

혐오와 차별에 맞서 싸운 이들의 이야기.



실망스러웠던건 그걸 모두 극 속에 장치로 숨긴게 아니라, 

직접적으로 알려주고자 했다는 것.


특히, 프라이드 퍼레이드의 피켓. 


1958년의 올리버가 

2017년의 실비아가, 올리버와 필립이 180분 내내 보여주고 있는데. 


올리버 핸쇼가 프라이드 퍼레이드의 은유 그 자체라고 말하고 있으면서 

'혐오와 차별에 맞서 싸우는 우리는 언젠가 이 역사를 극복하고 살아갈 거예요.'

라고 구구절절 설명하는 이유는 뭘까. 


그리고 그 혐오와 차별에 맞서 싸우기 위해 

실비아는 그냥 등장인물1인 '장치'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필립과 올리버가 진짜 자신이 되기 위해 도와주기 위해 설정된 캐릭터 같은 느낌. 

행동하고, 움직이고, 싸워야 하는 마음속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그런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실비아의 '괜찮아 질 거예요'가 

삶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이 아니라 시대를 풍미하는 문장 같은 느낌이 와서 참 많이 아쉬웠다. 





*



실비아가 프라이드에서 가장 좋았던 건 다정하고 따뜻했고, 

그러면서도 필립과 올리버를 둘 다 위로하고 또 사랑하는 강인한 사람이라서였는데. 

삼연에서의 실비아는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서 슬퍼졌다.



내 생각엔 이 후진 퍼레이드가 중요한 거 같아. 

오래전엔, 조금만 달라도 비정상이고 미친 거고, '병'으로 취급받았잖아. 

그래서 치료받고 숨기고.. 상처받고 상처 주고 


다음 장으로 이어지기 위한 필수불가결 요소이기도 하지만, 

1958의 그들을 요약해 주는 것 같아서 사랑하는 대사인데. 


실비아의 모든 대사가 그저 물 흐르듯 극을 위한 장치처럼 흘러가는 느낌이라 복잡해졌다. 







한 계절을 함께 했을, 어쩌면 두 계절이 함께였을 두 사람의 이야기.

산책하기 좋은 아름다운 계절, 이라는 순간부터 공기의 일렁임을 느꼈다. 



실비아가 말하는 '무언가가 시작된 그 밤'의 울렁거림을 

내가 느껴본 건 초, 재연 통틀어 처음이었다. 


1958년 필립의 삶에 나타난 

특별하고 기묘한, 그리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벨리핀치 올리버. 



가지마, 나 버리지 마 필립. 


가버린 필립의 등 뒤에 엎드려 울고 있던 올리버. 

가볍게 이야기하는 게 아닌 올리버의 사랑이, 

그리고 자기 자신의 문제가 무엇임을 알고 있는 올리버의 울음소리.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너무 사랑하고 있습니다 


처음 입 밖으로,형태가 되어 나온 문장에 가슴이 벅차 보이던 올리버. 

그리고 그 고백이 괴로웠던 필립. 




한 명씩은 꼭 있더라구요. 



올리버는 실비아가 말하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의 성적 취향을 단순히 호기심과 가십거리, 돈벌이 정도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그래서 내내 피터의 이야기를 듣는 올리버의 표정은 흥미로웠다.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세상이 변했다'고 말하는 피터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던 걸까. 



그리고 나 노력할 거야. 

나 스스로를 쓰레기 취급하지 않을게. 



2막 5장의 올리버의 그 고백이 진실하게, 

내내 오래 생각해왔다는 듯 들려서 정말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