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170411 목란언니 후기

LUN 2017. 4. 12. 00:45






지극히 현실적이고, 또 비극적인 이 이야기. 

살기 위해 내려왔으나 다시 살기 위해 올라가려 했던 한 여자의 이야기. 


무언가 광적으로 믿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이는 

자신의 가짜 신의 이름을 가지고 누군가를 속이고.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고야 마는 사람 앞에 늘 무릎 꿇고 있는 건 여자였고. 










착취당한 마음과 꿈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러나, 경계인이 아니라 머물 곳이 있었던 사람들이 감당해야 했을 마음의 상처는 

목란의 그것과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발붙일 수 있는, 등을 누일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그들은 머물 수 있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고, 

그 공간에 목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족'이라는 타이틀로 그녀를 끌어들였다. 


그들은 피붙이를 만날 수 있고, 그들에게 자장가를 불러줄 수 있고.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다. 


그래서 목란에게 무섭다, 표정이 이상하다, 그만 좀 해, 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목란은 스스로 감당해야 했고, 제 발로 일어서야만 했다. 


그리고 목란도 그들을 속이기로 했다.

당하지는 않기로 결심했다. 










어린 목란에게 의미를 부여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시대에 희생당한 어린아이라고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런데, 이름이 같다는 게 자꾸 걸리는 것이다. 


목란이 목란에게. 

목란이 목란에게 손을 뻗었다가 거둬들이던 그 암전 직전의 순간이 자꾸 걸린다. 


목란이 결국 홍등가로 갔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어린 목란은 경계인이 되어, 갈 곳이 없어져서 그곳에서 자라 슬픈 눈을 가지고. 

할 줄 알았던 건 오로지 노래뿐 인 것처럼. 


객석에서 보던 목란의 눈에 가득했던 그 슬픔이 잊히질 않는다. 







스피디한 장면전환에 지루하지 않은 구성. 

별개의 이야기 같던, 어찌 보면 별 의미 없어 보일 듯한 장면들 

(북한에서의 목란, 허 씨 집안의 망치, 태산과 태강과 태양의 이야기) 


그 모두가 사실은 이야기 그 자체였다.




보통은 중앙에 위치한 무대에서 할 법한 장면들을 양쪽 측면 무대에서 시선이 분할되게. 

그리고 그들이 중앙으로 다시 모여 또 이야기를 하나로 만들고. 


눈물이 날 것 같고, 울기도 했지만 계속 슬픔에 잠길 틈은 주지 않았다. 

발랄하고, 유쾌하고, 익숙하지 않은 북한의 언어 때문에 웃고. 

그런데 그 결말이, 비극이 너무나 무겁고 암담하고 비참하다. 

그래서 마냥 즐겁고 행복한 극이었다고, 재밌게 잘 봤다고 마무리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정말로 어딘가에 목란이 있음을 알고 있기에.



(사진출처 : 두산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