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812 사의찬미 밤공 후기
170812 김경수 곽선영 이규형
- 내가 전체적인 틀을 잡아줄게. 넌 그 안에서 네 능력을 발휘해.
'너에 대해 알아내는 건 일도 아냐. 네 머릿속 생각까지도 읽고 있으니까.'
사내의 제안에서 우진이 자신이 할 얘기를 명운이 꺼내니 계속 놀라는 걸 보니 저 대사가 떠올랐다.
처음부터 이미 치밀하게 준비되어있던 사내의 계획.
시작과 끝은 사내가 정했고,
그 안의 캐릭터들의 움직임은 사내에게 '단순한 흥미'를 가지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
도쿄 찬가에서 '스타'라는 대사를 따라 적고 있는 우진.
심덕의 말대로 우진이 경험한 것들만 기록 했다고 확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의 초석을 깔아두는 것처럼.
우진과 심덕이 만나는 과정을 우진 스스로가 대본에 적어 옮기는 것 같았다.
'나 노래해, 윤심덕이, 고국 무대에서!'
심덕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사내.
모든 건 그의 짜인 각본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공동의 작가지. 너도, 나도, 독단적으로 만들 수 없어.'
그 둘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향하지 않으리라는 건 사내도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가 만들어낸 캐릭터들은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둘이어서 사내가 원하던 완벽한 결말로 가지 않았지만.
우리 관계는 여기까지야 - 그가 사라진 이후 - 저 바다에 쓴다
그 관계를 끊어내고 싶은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함께하던 작업,
그것 하나뿐이라고 생각하던 우진.
그런 우진에게 보란 듯이 심덕과의 관계를 유지해 1921년에서 1926년까지 그를 옭아매는 사내.
파트너의 관계는 끝나고,
이제는 정말 사내가 움직이는 인형처럼 오랜 시간 조종당하고.
그가 정한대로 흘러가게 두면 안 된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지만 그의 직감은 알고 있었다.
종이를 총처럼 겨누는 사내를 보며 떨고 있는 우진은,
자신이 쥐고 있던 총보다 사내가 가진 종이의 힘이 더 강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다시, 다시, 다시, 하고 되뇌며 결말을 쓰기 시작하는 우진을 보며
내가 덩달아 절망에 휩싸이는 기분이었다.
우진이 느끼는 절망과 두려움이 내가 전달되면서,
이미 수백 번 시도했을 사내로부터의 탈출, 그 과정이 생략된 이 이야기가
오히려 더 내 상상력 속에서 탄탄해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오늘은 사실 심덕과 함께 이태리로 떠나려 했던 게 아니었을까? 할 정도로 심덕에게 애정을 쏟는 게 느껴졌다.
뀨사내가 돌아온 이후 매주 보고 있는데, 특히 오늘은 더.
사내가 흘리는 눈물이 생경한 그 어떤 감정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죽음의 비밀rep의 눈물이 서글퍼지기까지 했다.
사내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끝까지 알지 못하게 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