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2016~2017

171118 말들의 집 후기

LUN 2017. 11. 19. 22:28






이진주가 아닌 이진주의 끝이 시작이고 시작이 끝이었던 이야기. 


플북에 쓰여 있는 버려진 아이들, 이라는 말이 맴돌았다. 


기형적인 사회구조, 집단의 특이성,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당연한 아이. 


자라온 환경 때문에 제도 밖에 존재하게 된 아이들. 

다르기 때문에 서로에게 버려진 아이들. 


진주와 서진이 그런 아이들 같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쓴 거야?“ 



서진의 물음이 극을 보는 초반 내내 나의 물음이었다. 


서사를 이해하려 했고, 진주의 감정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극을 보는데 혼란이 왔던 걸까. 



극이 시작하면서 두 주인공에 대한 편견이 생겼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둘의 이야기 중 어느 것이 진실인지 모르겠고. 

진주가 말하는 '서진'이 너무나 입체적이라서, 당연하게 그 이야기에 끌린다. 

 


존재하지 않는 '가짜친구'를 만들어 낸 줄 알았었는데, 친구가 아닌 '자기 자신'이 되어버리는 거였다. 



거짓말은 달콤하고, 거짓말도 하다 보면 진짜 같아 질 거라고 이야기하는 서진, 진주, 혹은 진. 

거짓말들로 시작한, 좋아하는 감정과 말들의 시작. 







헨젤과 그레텔을 극에 맞춘 새로운 시선의 이야기와 함께 진주와 서진의 서사가 맞물린다. 


진주가 만들어 내는 '진'에 대한 뭉뚱그린 서사, 극에 나오는 헨젤과 그레텔 같은데, 

이 헨젤과 그레텔은 극 전체를 관통하기도 하고, 극이 하고 싶은 이야기 같기도 하다.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에서처럼, 아이들을 구하러 와 줄 어른이 필요했다. 

그게 은유이건, 아니면 결말을 위한 장치이건. 


쌓아놓은 성을 허무는 것, 잠겨버린 문을 열기 위해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형사, 같은 어른이 필요했다. 

지금도, 그때도, 극 속의 아이들도. 


형사는 극을 보는 관객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도 같고, 

오지랖을 발휘하는 것도 같고, 그 중의 가장 아이들의 포지션에 가까워 보인다. 


형사가 헨젤과 그레텔 나레이션을 이어받은 때부터, 

어른의 의문을 풀어주는 파트이고(ㅠㅠㅠ) 

그게 진짜 이야기의 시작이고. 

서진이, 혹은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이 이야기의 중심이었던 것 같다.





진주가 웃는지, 우는지 점점 구분 가지 않던 그 날 밤. 


그 또래에 아이들이 동경하는, 행복해 보이는 조건과 모습을 가지고 있는 서진. 


또래들보다 조금 더 어른스러운, 

정확히 말하면 방관자와 같은 태도를 보이는 서진을 이때쯤에는 이해할 수 있었고, 

서진도 다른 의미로는 진주를 동경했겠구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게 진실이건 아니건 진주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고, 그 동경[각주:1]이 거짓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그 말들에 사로잡혀있는 진주와 

진주를 구해내고자 하는 마음이 절박해 보이는 서진. 


그 말들이 서진을 쳐다보던 순간 소름이 끼쳤다. 

진의 성은 이미 너무나 견고했기 때문에. 


서진의 말과 존재, 그리고 진주의 존재까지 필요 없음이 너무나 명확하게 보였기 때문에. 



우리 앞으로 뭐가 될까?

근데, 지금의 나는 아닐 거야.


나도, 지금의 내가 아닐 거야.



마지막 장면, 첫 옥상에서 햇빛이고 낮인 장면이 유일하게 나왔던 거 같은데 

과거의 반짝거림과 빛남이, 아름답고 슬펐다. 


말들의 집의 주인은, 아니 주인공은 진이고, 진주이고, 또 서진이었다. 

불빛을 따라 그 이야기 밖으로 탈출한 서진이, 서진이 아닌 서진이 되기를.








사실 이 극에 후기가 필요할까, 싶다. 


청소년 극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고, 

고등학생들이 나오는 이야기라는 대략의 시놉만 읽고 갔다. 

그 시절에 크게 향수도 없고, 

나한테 고등학생은 너무 먼 시절의 이야기라 괜찮을 것 같았는데 심리적 압박이 강했다. 


내가 무엇인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던 그때의 그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정말 의외로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아니,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놀랐고, 그리고 보다가 몰입했고, 서진의 '우리가 왜 그랬는지'라는 말에 눈물이 터졌다. 

 


-




후기를 다 써놓고 플북을 읽어봤는데... 



나는 이 시절을 지나서, 내가 이 시기의 감정들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있는, 

극에 나오는 그런 어른이기 때문에. 


내 시선과 사고가 너무 편협하고, 

극에 나오는 어른들과 다를 바가 없어서 사실은 조금 참담해졌다. 


그래서 후기를 휴지통에 넣었다가(..) 

이것도 사유의 기록이니까 남겨두기로 했다. 

  1. 분명 단순하게 ‘동경’이라는 말로 둘의 관계를 정의할 수는 없지만, 나는 케케묵은 표현들로만 극을 표현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게 사실은 이 후기를 쓰는데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