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200726 밤 마우스피스

LUN 2020. 7. 27. 21:22

저번 후기에 '마우스피스를 처음 보고 나왔을 때는 끝없는 자기 복제의 메시지만을 전하는구나, 했는데 며칠이 지나고 나서 그게 아님을 깨달았다. 이 극은 지금껏 주던 메시지를 전복시키는 극이었다. 괜찮아지지 않을 거고, 그 목소리는 사실 닿지 않을 거'라고 썼는데. 두 번째 관람에서는 이 극이 기존 메시지의 전복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전달하려고 하는 그 '목소리'와 '이야기'가 중요한 것임을 깨달았다.


- 잘 만든 거라서 그래. 정말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를 팔거든.


데클란이 자신의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시안에게 하는 말은, 이 극 전체를 관통한다.
리비가 극장에, 무대 위에 올린 것은 가짜였다. 가짜를 팔아 리비는 진짜 삶을 이어 나간다.

데클란은 리비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리비가 복제해낸 데클란 같았다.
어느 순간까지는 데클란인데, 시안을 데려오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말하던 지점부터는 아니었다.

동화책 속 그림같다던 리비의 말을 언덕에서 데클란이 그대로 반복하는 순간, 이건 데클란의 언어를 사용하고 싶어하는 리비라는 확신이 들었다. 지워져 버린 데클란, 지문처럼 행동하는 데클란.

처음에 리비가 정해두었던 결말이 데클란의 분노를 일으켰던 이유는, 실제 삶과 다르게 '스토리 텔링의 법칙' 때문에 '극적인 행동'을 했기 때문에 인 것 같았다.


- 첫 번째 아이디어

데클란이 칼을 들고 저 말을 하는 순간, 이건 완벽하게 리비의 마우스피스라는 것을 알았다.
무대 위에 올라간 남자를 그린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을 뿐, 실제로 데클란이 그렇게 하지 않았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데클란은 무대에서 쓰러지지 않았다.

이건 리비의 첫 번째 결말이었다.

자신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던 언덕까지 뛰어 올라가 그 공간에 다른 이들이 올라오는 걸 본 게 두 번째 결말 같았다.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는 데클란. 그게 정말 도움인지 모르겠지만.


- 가짜가 이렇게 진짜처럼 보일 수 있는지.

어제 대사가 진짜랑 가짜 순서 바뀐 거 같은데 너무 이게 맞았음.

옳은 일을 한다는 리비의 기만은 가짜 인생을 전시하고, 이걸 일어났던 일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데클란의 언어로 극을 쓰려다가 데클란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인물을 만들어 낸 사람. 리비퀸.

데클란의 목소리를 흉내 낸 가짜는 절대 진짜 인생을 담아낼 수 없다.

데클란의 삶인 이 이야기가 자신의 것이라 말하던 리비.
어떻게 다르냐고 묻는 데클란에게 '내' 이야기라고 답했던 이유는, 너무나 기만적이게.
사랑하는 데클란은 극 속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나의 이야기야, 라고 대답하고 싶었던 것 같다.


- 나는 작가다. 나의 일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작가였다던 리비가 자신이 작가라고 말하는 이 대사를 듣는 순간, 데클란의 진짜 인생은 이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리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극은 이야기이다. 마우스피스는 데클란의 삶을 재조립하고 끝내는 파괴하려 했던 리비의 이야기이다. 누군가 했던 말처럼 사랑 이야기다. 자신의 사랑 이야기. 자신의 심장이 데클란과 닿았다고 믿고 있는 작가의 이야기.




- 관객들이 그 이야기에 참여한다는 생각을 하게 하면 안돼
연극열전은 대본집을 내주세요. 이 부분 대사가 기억 안 나니까


이 극속에 언제쯤 나를 들어가게 하더라, 하고 곱씹어본 적이 있었는데 어제 정확히 알았다.

데클란은 모자를 뒤집어쓰고 극장으로 들어와서 뒤를 돌아서 객석을 보면서 당신들 사이에 앉았다고 할 때.
그리고, 리비가 '여러분이 내게 박수를 보낸다'고 할 때.
그 두 대사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객석의 당신들도 참여했다고, 이 기만은 혼자서 벌인 게 아니라고 말하는 거였다.

극을 보면서 데클란을 동정하고, 리비의 실패를 내 것처럼 여기다가 데클란이 칼을 든 순간부터는 아무 '판단'을 할 수 없다.
누군가의 착취를 사랑이라고 포장하는 내가 뭐라고 판단을 하겠는가, 나는 이야기를 보고 쓰는 보통 관객일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