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2016~2017

160423 낮 연옥

LUN 2016. 4. 25. 21:09





1장 1막이 시작되면 여자가 무대 중앙에 앉아있는데, 

빛이 드는 곳에 칼이 있다. 


그 칼이 누군가를 상처내는 칼일 수도 있고, 과거를 끊어내는 수단일 수도 있다.

아니면, 연옥에서의 모든 걸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리셋의 버튼일 수도 있고. 


연옥을 탈출하게 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는데 

오늘 공연은 연옥을 나가는 거에 여자가 별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아직 과거와 기억에서 상처받은 그 모습 그대로.

더 날 것의, 서로가 날이 서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내용을 알고 보니 1장의 남자에게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파워게임을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여자를 휘둘러 자신의 맘대로 하려고 하는 1장. 


분명 어제와 같은 공연의 텍스트인데 느낌이 전혀 달랐다. 

1장의 남자가 너무나 간절했고, 2장의 여자는 남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다. 


연옥은 시간의 순서가 일반적인 개념과 다른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까

1,2,3장의 진행이 일반적인 시간이 흐르다- 라는 개념과 다르게 진행된다고 생각하며 봤다. 


남자가 담당자와 이야기하는 2장이 남자의 기억일 수 도 있고, 

지금 연옥의 남자의 바로 옆 공간의 이야기 일 수도 있고, 

이미 예전에 벌어졌던 그들의 첫번째 치유의 순간일 수도 있고. 


그 정확하지 않은 시간인 2장은 굉장히 매력적이고, 

3장이 시작하는 순간 긴장하게 만드는 이유인 것 같다. 



3장의 여자는 자신의 남편을 빼앗은 그 여자를 용서하는 건 자신이 아닐거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그 순간이 아주 오래 걸릴 치유의 시간을 대변하는 대사 같았다. 


2장 마지막 즈음에 아주 오래 걸릴거라고 말하던 남자의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하고. 




두번째 봐도 역시, 3장은 대단하다 라는 소리밖에 안나온다. 

2인극에 6명이 모두 무대에 올라오는 순간이 굉장하다.


기억인지, 반복되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인지, 모두가 다른 공간의 다른 시간인지. 

아무것도 짐작가지 않다가 


'너지?' 하고 묻는 여자의 말에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서로 시선이 맞고 곁을 지나치게 되는 그 순간이 

처음부터 모든게 다시 시작하기 직전의 시간인걸 알게 되니까 손이 저릿저릿했다. 







결국 구원은 없었지. 

서로의 상처를 후벼파고, 죄를 진열하고.

그 중의 최악을 뽑으면서 또 서로를 속이고. 


절망만 가득한 이 이야기에 자꾸 마음이 가는 건,

언젠가는 그 영원히,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 끝날거고. 

그때는 그들이 그 껍데기를 벗고 '상처받지 않은 순수한 영혼'만을 가진 채 

연옥에서 벗어나길 바라며 극장을 나왔기 때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