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505 킬미나우 후기
160505 킬미나우 낮
이석준 오종혁 이지현 이진희 문성일
조이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애쓰던 삶에 찾아온 병은 좋은 아빠인 제이크에게서 모든 걸 다 앗아간다.
그리고 가족의 일상은 다 어그러진다.
보통, 지금까지 살아오던 평범한 삶이 아닌.
조이가 왕인 완벽한 세상이 아닌, 제이크를 위한 세상.
그 완벽한 존재를 키워내야 하는 완벽하지 않은 아빠에 대한 이야기였고.
자신을 키워낸 오빠이자 아빠인 제이크와 자신의 삶에서 균형을 잃은 트와일라에 대한 이야기였고.
마음의 안식처였던 제이크를 잃어가는 로빈의 이야기였고.
그리고 자신의 왕국을 만든 이를 존중하고 사랑해야만 하던 조이의 이야기였다.
'나 '라는 존재를 잃어 갔던, 잃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
- 오빠, 난 조이보다 오빠가 더 걱정된다니까?
- 나한텐 심각한 장애를 가진 아들이 있어. 나한테 '나'는 없어.
사실 시작하자마자 이 대사가 나올 거라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에 조금은 얼얼한 느낌이었다.
'심각한 장애를 가진 아들'의 존재가
제이크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 같아서 저 말이 너무 아프게 들렸다.
더 이상은 날 힘들게 하지 말라는 뉘앙스도 담겨있었고, 제이크에게는 오로지 조이뿐인 삶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에게 '나'는 없다는 제이크가 가장 뚜렷하게 보였던 부분이 의상이었는데,
다른 인물들은 나올 때마다 옷이 바뀌고, 스타일도 바뀌는데 제이크는 늘 그대로였다.
상상할 수 있고,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은 조이의 오늘과 내일 그리고 또 다가올 다른 날들 뿐이기에
자신에게는 최소한만 하고, 조이만을 위한 세상을 만들어 주고 있는 제이크.
시작하고 나서 조이가 라우디와 게임을 하면서 '킬 미 나우' 하고 외치는 걸 보면서
자신도 남자이고, 욕망이 있고, 제어해야 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게 그대로 노출되고 나면 수치심과 원망에 가득 차면서 세상을 저주하면서
조이가 자신의 세계가 무너져 내리는 걸 견딜 수가 없어서 자신을 죽여달라고 말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제이크의 '조이뿐인 삶'에서 조이가 빠진 후의 그 삶에 대한 이야기 일 줄 알았는데, 전혀.
이제 시놉을 좀 읽고 가야 하나, 싶기도 하다. 시놉이랑 전혀 반대로 생각하고.. 연옥부터 왜 이래?
그런데 그게 사실은 제이크에겐 '힐 미 나우' 였다니.
- 치료방법도 없어. 고통이 줄지도 않아.
나는 내 고통을 내 마음대로 끝낼 권리가 있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의 뜻을 받아들이고 존중해 줄 수 있을까.
아파도 견뎌, 살아만 있어줘 라고 말하는 게 때로는 커다란 욕심이라는 걸, 이 부분에서 내내 엉엉 울면서 생각했다.
로빈이 그런 제이크에게 미안해서, 혹은 그를 걱정해서.
제이크의 말대로 매주 화요일마다 조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제이크가 서문에 '조이 스터디에게'라고 썼으면서도 말해주지 못했던 그 책의 존재를 로빈이 조이에게 알려준다.
사실 감히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애정의 크기라서 섣부르게 생각한 걸 수도 있지만
로빈은 어쩌면 제이크를 가장 많이 이해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한 인물이 아닐까 싶었다.
- 오빠는 날 이해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트와일라의 삶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빼면 남는 게 없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트와일라의 삶에는 제이크와 조이가 깊숙하게 들어와 있다.
그 삶에서 제이크가 사라진다면. 그 두려움에 트와일라는 잡아먹힌다.
사실 잡아먹힌다는 표현이 옳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극의 끝에 조이에게 목욕을 시켜달라 말하는 제이크를 보면서 절규하는 트와일라를 보며
저 말을 뱉은 걸 내내 살면서 후회하게 되겠지, 하고 생각했다.
- 하지만 나는 아빠가 저렇게 그냥 있어 줬으면 해
- 고모, 아빠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조이는 사랑하는 아빠의 고통을 지켜볼 수 없어 그의 선택을 존중하고,
트와일라는 자신의 삶에서 그 제이크가 사라질까 봐 두려워 그의 생명을 유지하려 하고.
- 누가 저한테 책을 읽어준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라우디의 결핍과 외로움, 그리고 정신적인 고통은 가볍게 털어내듯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부분에서 가장 아팠다.
로빈이 라우디가 없는 시간 조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고,
제이크는 책을 사랑하는 아들에게 바친다는 서문을 썼고,
그가 쓴 글을 찢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제이크의 아픔을 이해하며 괜찮다고 말하는 라우디.
- 라우디 없으면 우리가 뭘 하겠어?
라는 말에 라우디가 이 집에서 가지고 있던 무게, 소속감을 느낄 수 있어서 더 아팠고.
졸업식
현실이 아니고, 꿈이고, 어쩌면 책의 내용일 수도 있는
졸업식 직전 아빠와 게임을 하며 집안을 뛰어다니는 조이.
보통의 평범한, 대부분 일반적인 가정에서 볼 수 있는 이 모습을
이들은 영영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게 너무나 아프고 또 아파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 모든 걸 다 놓치고 있어.
성장한 한 아들의 졸업식.
제이크의 끝.
아들을 키우며 성장한, 자신이 썼던 책 속의 그 남자보다 완벽한 아빠였던 남자의 졸업식.
자신의 책에서 아들의 오리와 함께 시작했던 여정을 아들의 오리와 함께 끝내는 제이크.
다른 이들에게는 제이크 없이 살아내야 할 삶의 시작.
그리고 극이 끝나면 그 오리는 욕조 밖의 세상인 공원에 있다.
*
영어 스크립트를 좀 봤는데
데이지가 자신을 괴물이라고 말했다는 대사가
She said I’m ugly 라고 되어있었다.
제이크와 조이의 유대관계가 더 강하게 다가왔던 건
아마도 조이가 자신을 '괴물'이라고 말했기 때문이 아닐까.
보통 인간의 개념이 아닌 괴물이라고 명명했기 때문에,
자신의 '완벽한 존재'가 상처받지 않기를 그가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제이크가 느꼈을 죄책감과 책임감이 나에게 전가되어 내내 아팠다.
-
커튼콜이 시작하고 나서 겨우 진정했던 눈물이 또 흘렀다.
제이크가 조이를 여전히 사랑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널 왕으로 만든 이 세상 밖에서도 너는 괜찮을 거라고.
괜찮아질 거라고 다 괜찮을 거라고.
그래서 그 모습을 보면서 숨넘어갈 정도로 울었다. 겨우 진정했는데..
조이의 죄책감과 그리움 때문에 조이의 꿈에 나타난 아빠 같았다.
후기를 쓸까 말까, 고민했던 건
후기를 시작하게 되면 고통의 경중을 재는 것 같은 뉘앙스의 글이 될까 봐 인데
역시나....
시놉을 안 읽었기 때문에 극 초반에 멋대로 생각한 부분들도 담겨있다.
플북도 안 사고 그냥 왔기 때문에
제작진이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내 사고가 많이 흘러갔을 수도..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내가 너무 무력하게 느껴져서 슬펐다.
여기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이 겪고 있을 그 삶의 무게를 내가 오롯이 다 짊어지고 온 기분.
아름다운 이야기도 아니고, 행복해지지도 않았다.
내내 눈물이 흐르거나 극 밖의 외부자가 되고 싶어서 도망치고 싶기도 했다. 아니 싶었다.
그런데 자꾸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