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107 밤
1막
강도의 진술
진실을 원해? 하고서 약 올리듯 이죽거리며 혀로 입술을 쓱 핥는데, 교활하고 악해 보였다.
이 짧은 극에서 '고향'을 언급하는 순간 강도의 과거가 한번에 스쳐 갔다 싶을 정도로.
그리고 그 선은 1막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세상의 나쁜 말은 다 갖다 붙여야 할 것 같은 캐릭터 표현에 1막 내내 최재림을 다시 봤다.
손을 뻗어서 여자의 팔을 낚아채는 게 아니라, 잘 보이려고 머리를 더 세우는 강도.
어이없다는 듯 소리 내 웃더니,
자신이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아도 될 거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나서부턴 표정부터 달라졌다.
남편 옆에 앉아서 웃다가 '아내입니다' 하고 웃는 남편을 웃으며 바라보다 그의 시선이 거둬지자 표정을 굳히고는.
그때부터 거미줄을 치는데, 공기가 달라지는 느낌이었다.
종일반을 쉽게 못 하는 편인데 낮과 밤 강도의 진술에서의 온도 차이가 확연해서 좋았다.
낮에는 사이드에 앉아있었는데 진술 전에 걸어들어오는 소리가 수요일이랑 달랐다.
진술을 시작하고서 낮공에서는 '사람 죽이는 거? 그거 어렵지 않아' 라는 느낌의 과시욕이 넘치는 강도 같았는데,
밤공에서는 '정말 재밌는 일이 있었어, 한 번 들어볼래?' 하는 것 같았다.
자기에게 정말 즐거운 일을 이야기하러 온, 일말의 죄책감은 찾아볼 수도 없는 캐릭터였다.
She Looked At Me
낮에는 여자에게 손을 뻗으려고 했고, 밤에는 자신의 매력을 어필 하듯 머리를 다시 만졌는데
'꼬신 건 너니까' 라는 가사에 대한 반응의 두 가지 버전을 다 보였다.
Big Money
남편에게 술을 먹여서 인사불성을 만들어 데려가던, 낮
계속 교활한 표정(!)을 짓던 진술 내내 자꾸 '뱀의 혀'라는 말이 생각났는데,
밤엔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며 술 버리는 거 없이 오로지 언변으로 남편을 회유한 느낌이었다.
남편
팔메토울 라운지에서 그녀에게 찬사와 환호를 보내던 그는 그녀의 밑바닥 앞에서 참회의 눈물만 흘린다.
냉철한 사업가인 듯했지만, 돈이 없으면 그녀도 싫어할 걸, 이라는 말에 스위치가 눌린 사람처럼 강도의 말을 따른.
그의 열렬한 마음은 배반의 백합으로 인해 피로 물들고.
그 와중에 '총을 사줄걸' 하는 걸 보니 불쌍하기도 하고 미련하기도 해서 씁쓸한 캐릭터.
*
그게 당신에게 왜 중요한데요?
- 신부의 고백 혹은 고해성사
성직자가 자신이 믿는 신을 배반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을 가졌던 건 다 거짓말인 것처럼
단 한 순간도 신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껍데기만 신부인 그는 철저하게 인간마저 믿지 않았다.
구원, 기적, 그리스도.
그게 가장 필요했던 건 다른 사람이 아닌 신부 그 자신이었음을,
자신이 믿는 것이 옳은 믿음이었다는 확신이 필요했고.
그런 그에게만 보이던 기적.
자신이 보고 싶었던 그 기적만 본 신부.
2막에서의 SEE WHAT I WANNA SEE
낮에는 자신이 그녀에게 신이 되겠다는 것 같은 느낌.
신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모르는 그녀에게 화가 나서 윽박지르는 느낌.
밤에는 보이지 않는 희망에 손을 뻗는 여배우를 안타깝게 쳐다보고,
기자
모든 걸 스스로 버린 회계사보다
자신 때문에 모든 걸 잃은 여배우보다 더
신과 기적이 필요했던 아주 평범한 인간.
*
합이 맞고,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부각 혹은 빛나는지 아는 영리한 배우들이 하는 작품이 참 좋은데.
Final act1 이 딱 그 영리함이 빛나는 넘버인 것 같다.
각자의 이야기가 한 번에 쏟아져 들어와서 극에 몰입해 있다가
그 어느 것도 진실임을 믿지 않으니 순간에 사건 밖의 외부자가 되는 느낌이 묘하고 즐겁다.
4번 보고 나서야 조금 2막의 각 인물이 이해되기 시작했는데, 더 볼 수가 없었다.
SWIWS의 2막은 곱씹을수록 여운이 많이 남는 것 같다.
화자인 신부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느꼈던 게,
그가 신의 존재에 대해 절망을 느꼈던 때와 분노를 느꼈던 때가
극이 하고자 하는 말, 혹은 내게 하고자 하는 말이 다 달랐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진실이 중요한가요?
당신에게 기적이 중요한가요?
당신에게 희망이 중요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