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강구에게 주어진 자유는 자신의 의지로 생긴 자유가 아니었다.
첫 번째 자유인 <내 인생 괜찮은데> 때는 가석방으로 세상에 나왔고
두 번째 자유인 <악몽rep> 출소의 개념이었다.
출소한 강구는 '혼자니까 자유'라고 말한다.
강구는 단 한 번도 자신이 직접 거취를 선택한 적이 없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고,
(진심은 아니었겠지만) 아빠에겐 외국에는 따라갈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고.
절벽으로 내몰리는 강구의 삶.
자신을 옭아매고 혹은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강구는 자유로웠다.
끔찍하게도.
남는 것과 떠나야만 하는 것에 대하여
버킷리스트를 되짚어가며 회상으로, 과거의 현재로 돌아간다.
강구와 해기의 기억이자 추억을 유영하는 이야기이다.
별다를 것 없는 10대 소년.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사는 두 소년.
자신의 불행에 취해 타인은 안중에도 없는 강구와
자신의 불행이 타인에게도 불행임을 알아 아프지 않은 척하는 해기.
사랑이 결핍된 강구가 삶이 절실한 해기를 만나고,
해기가 버킷리스트를 지워가게 됨에 따라 강구도 천천히 플라시보 효과를 경험한다.
늘 떠나고 싶어 하던 강구는 남아야 하고, 남고 싶어하는 해기는 떠나야 한다.
나는 뺄셈에 약하다.
남는 것들
사라지는 것들이 이해되지 않는다.
<따로 또 같이> 신해욱
해기는 떠나는 사람의 마음을 잘 알고 있고,
강구는 남겨지는 사람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강구의 엄마는 어린 강구를 (이유야 어찌되었든) 버리고 떠났고,
사회에서 문제아라는 이름으로 낙인찍힌 채 도태되어, 구석에 남겨진 채 자라지 못하고 있다.
해기는 소멸하여가는 육체를, 자신 때문에 무너져가는 가족을, 점점 빛을 잃어가는 생을 보고 있다.
멀어지는 평범한 삶, 잦아지는 고통에 자신이 곧 떠나야 함을 온몸으로 실감한다.
남아있는 강구는 자신을 떠날 수밖에 없는 해기의 마음을 모른다.
자신이 누군가를 떠나게 된다면, 그때는 알 수 있게 되겠지만, 극 속의 강구에게 '떠남'은 곧 '남겨지는 이의 상처'다.
어렴풋이 짐작하고만 있던 때에 해기가 강구에게 말한다.
- 네가 뭘 알아.
- 떠나는 사람 마음은 잘 알아.
해기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도 후회하지 않기 위해 향했던 공항이
사실은 해기와 가장 빠르게 이별하는 길,
해기의 곁을 떠나는 일인 걸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해기는 강구의 곁을 떠나야만 했다.
육체는 빠르게 무너져가고 있다.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다.
강구가 일을 만들지 않아도, 등 떠밀지 않아도 '이별'은 필수불가결이었다.
어쩌면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 남은 나날들.
해기는 웃을 수 있을 때 모두의 곁에서 떠나길 원했다.
해기는 남고 싶었고, 떠나야 한다는 게 억울했다.
그래서 '왜' 그랬냐고 묻는다.
왜 나는 끝까지 신에게 매달려 삶을 구걸해야만 하냐고.
왜 내 삶은 벌써 끝이 보이고, 네 삶은 더 남아있는 거냐고.
도대체 왜 아빠를 때려야만 했느냐고,
왜 내가 웃는 모습으로 너를 포함한 모두와 이별할 수 없게 만들었느냐고.
강구가 다시 소년원에 들어가게 되면서 (비약이지만) 버려졌고, 남겨졌다.
홀로 남겨지고 나니, 강구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자신이 떠나게 되면 강구가 또 혼자 남겨질까 봐,
강구에게 제대로 된 인사를 하지 못하면 강구도 자신도 너무나 슬프고 아플 것 같아서
해기는 강구에게 편지를 쓴다.
네 삶도 아름답게 펼쳐질 거라고,
그러니 나처럼 '왜'냐고 묻지 말라고.
한 발자국만 내디디면 절벽이고,
뒤를 돌면 캄캄한 어둠뿐인 악몽 같았던 강구가 살아왔던 삶,
끝이 정해져 있어서 할 수 있는 게 없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사는 것만 같았던 해기의 삶은
플라시보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또 해기의 버킷리스트라는 이름으로 조금 더 특별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고.
우리는, 강구와 해기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했었다는걸.
서로의 삶에서 '등대지기' 같은 존재였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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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퍼 실수가 없으니 에스프레소 더블 넘버가 웃기게 엉망진창이더라.
폴라로이드 안찍힐뻔해서 죠강구가 진짜 놀라고,
여행가방 닫겠다고 낑낑대서 선글라스랑 버킷리스트 적힌 공책 철해기한테 집어던지고 빵터지고.
오늘 공연은 눈물이 난다기보다는 마음이 아려왔어.
오늘이 자막이었는데, 유독 눈에 밟히는 장면들이 많더라고.
강구의 노래 전후로 박제하고 싶었어.
철해기가 다 가져가라고 억울하다고 울면서, 흉터를 다 보이게 여니까
죠강구가 셔츠 잠가주려 하고, 다 가려주려 하고.
강구가 자신의 손목에 있는 흉터를 감추고 가리듯이
해기의 흉터를 가려주려고 하는데 그걸 철해기가 온몸으로 거부했고.
결국에는 셔츠도 어떻게 수습하고 가디건도 걸치고 어깨를 꼭 잡아주는데.
그게 너무 절박하고 아픈 거야.
얘들은 이렇게,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하는데.
살기 위해서 만든 흉터들은 꼭꼭 숨기고 살아야 한다니.
둘은 서로에게 끝까지 이런 존재잖아.
계속 상처 주고 상처받고. 치유하고, 또 치유하는. (프라이드 생각나네..)
이렇게 아프고 고통스러운데,
사는데 이유가 없어도 괜찮고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해 줄 수 있다니.
(울었겠지만) 웃으면서 누군가를 보내줄 수 있다니.
등대가 되어서 누군가의 삶을 지켜줄 수 있다니.
*
초연 때부터 쓰겠다던 총 후기를 이런 형태로 가져오다니(...)
신해욱의 시를 읽고, 저 부분에 대한 건 꼭 텍스트로 남겨두고 싶었어.
공익뮤지컬인 만큼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정확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니까.
재연에 들어서서 저 부분이 너무 명확해서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초연때 연습실 다음에 '우리는 행복했습니다' 라고 말하던게 정말 좋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