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인물의 생의 궤적을 따라가는 작품을 좋아한다. 성장하는 것도 좋고, 액자식 구성으로 회상하는 것도 좋다. 인물이 겪는 사건들과 그로 인해 수반되는 감정들을 같이 훑을 수 있어서인데 제인이 딱 그랬다. 제인의 선택을 나는 반드시 응원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사라는 10살인 제인을 증오에 가까운 미움을 가지고 키우고(쓰는 건 키우는 거지만 사실 사라는 누군가의 생의 흔적을 떠안고 살아내고) 사촌과 동등하게 다툴 수 없었지만, 괴롭힌 가해자가 된 뒤 징벌방인 붉은 방에 갇힌다. 외삼촌이 돌아가신 후 아무도 머물지 않았던 방. 그 방에서 귀신을 본 거 같다며 발작을 일으키고, 그런 제인을 감당하지 못한 사라는 제인을 자선학교에 보내버린다.
"지옥은 없어"
로우드 자선 학교는 제인이 처음으로 만난 '커다란 세계'였다.
브로클허스트목사가 제인을 '모두'가 볼 수 있게 의자에 올린 후 '사탄'이나 '악마'의 자식이라고 공표한다. 어린아이의 세계에 매우 잔인한 벌인데 이 소리를 듣고서 비참해하고, 괴로워하는 제인에게 웃어주는 한 사람. 아이들은 멍청하지 않다 말을 건네고, 한 시간 동안 의자에 올라가 모두의 시선을 받는 '형벌'을 받은 제인의 다리를 주물러주고 물을 건네는 사람.
한 인물이 대비되는 극단의 지점에 있는 인물들을 연기해서 더 명확하게 캐릭터가 대비된다. 어린아이를 괴롭히는 냉담한 사라 외숙모를 볼 때면 어떻게 저 어린애한테 저렇게까지 하는 미운 연기를 할까.. 싶고, 꼬장꼬장한 브로클 허스트 목사를 보여주는 우연 배우는 무척 얄미웠다. 헬렌을 연기하는 우연 배우는 우연 헬렌은 너무 맑고, 다정하고, 사랑스럽고. 또 신성한 부분마저 가지고 있다.
제인에게 헬렌은 로우드 학교 안에서 만난 빛, 혹은 구원에 가까운 인물인 것 같다. 자신의 결점으로(사실 그게 진짜 결점이었을까) 선생님들이 화내는 것을 비난하지 않았다.
내세의 영원한 삶은 오로지 천국에만 있다고 믿으며 지옥은 없다고 말하는 헬렌이 신기했다. 부당한 일과 사실상 학대를 당하면서도 선을 믿고 신을 믿고, 이곳의 고통은 잠시일 뿐. 죽기 전 제인을 만나 다행이라고 말하는 다정한 목소리로 건네는 마지막 인사에 모질었던 우연사라를 잊어버렸다.
사람의 사랑에 집착한다고 헬렌이 말하는데(이런 뉘앙스였는데 정확한 대사는 모르겠다) 외숙모에게 잘 보이려 노력했던 시간을 제인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며, 헬렌에게서 관용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가진 의미를 배우게 된다.
"잘 자요, 안녕 내…."
원작의 로체스터는 30대 후반의 (아마도)추남에 가까운 운동가였기에, 우연 로체스터가 나오는 순간 아득해졌다. 보이는 겉모습이 너무나도 완벽하고 멋져서. 그래서 제인 걔랑 살아라! 하고 자꾸 마음속으로 외쳐버렸으니까. 아니 아무튼.. 비밀을 감춘 인물을 연기하는 정우연에게 심장 한쪽을 내주었는데 아니 이건 이거고.
처음에 제인이 로체스터가 누군지 모른 채 이야기를 한다는 걸 깨달은 순간 변하는 우연 로체스터의 표정이 좋았다. 로체스터와의 만남부터 굵직한 사건과 대사들은 버리지 않으면서, 제인과 로체스터의 관계를 풀어나가는데 이 부분이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로맨스가 존재하지만 직접적으로 정말 그들에게 정말 그런 관계가, 애정이 존재하긴 했던 건가? 하고 의심하며 극을 보고 있었다.
'잘 자요, 내….' 그가 말을 멈추고 입술을 깨물더니 황급히 내 곁을 떠났다.
제인 에어 (상) 샬럿 브론테 - 열린책들 세계문학 165
책에서 좋아하는 부분을 무대 위에서 보게 되는 건 굉장히 감격스러운 부분이었다. 홀로 남겨진 채 자신의 감정을 고민하는 제인이 로체스터가 떠난 뒤 이렇게 부각되게 되다니.. 로맨스가 있긴 하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델에게 주는 선물상자 이야기를 할 때도 그렇고 로체스터의 시선 끝에는 언제나 제인이 있는데 그 시선을 제인이 절대 알아채질 못한다.
제일 궁금했던 건 로체스터의 집시 노파연기 후 본인으로 돌아올 때의 극적 장치나 효과였는데, 이건 연극이라서 배우가 관객에게 등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던 나의 기대였던 것으로.. 진아 제인은 집시 노파를 마주하고서 이 사람을 전혀 알아보지 못함으로 이 부분을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가서 와인을 가져다 달라는 로체스터의 부탁을 받고 응접실이 된 서재(?)로 돌아가 쏟아지는 시선에 주눅 들지 않고, 그 자리에서 와인을 잔 마시고서 의기양양해서 하는 진아제인을 보며 사랑스러움과 뿌듯함을 느꼈다. 로우드 자선학교에서 쏟아지던 시선에 괴로워하던 모습과는 다르게 당당해진 모습.
메이슨이 베르타에게 공격당해 메이슨을 간호할 때 제인과 로체스터는 둘만의 비밀을 만듦과 동시에, 로체스터에게 베르타가 있다는 그 비밀을 철저하게 감추게 된다. 이 장면은 흰 천에 피를 묻힌 것으로 메이슨을 대신하고, 천을 제인이 날리며 메이슨이 새벽에 먼저 떠났다고 말하는 로체스터의 목소리를 제인이 듣고 있는 것으로 표현되었던 것 같은데. 2인극에서 인물을 너무 세련되게 날려(..)버리는 것 같아서 기억에 남았다.
"난 지옥에 가겠지"
어린 시절을 내내 괴롭게 만든 외숙모임에도 아프다는 이야기에 제인은 다시 게이츠헤드로 간다.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었던 곳으로. 사실은 생의 지옥과 같았던 곳으로.
사실 극의 초반부(아마도 1막)의 사라는 너무할 정도로 제인을 괴롭히는데, 후반부에 가면 어린아이 넷(그런데 그중 하나는 남편 동생의 아이)을 혼자 키우게 되어 얼마나 괴로웠는지. 죽기 직전 제인에게 털어놓는데 이때 우연사라의 무너짐이 마음 아팠다. 그래서 자꾸 괄호를 만들어 부연설명을 하게 된다.
분명 제인보다 크고 단단해서 세상 모든 것에서 제인을 떼어놓으려 하는 것 같았는데.. 물론 실제로도 사라는 '제인의 삶에 개입하지 않겠다 선언하며' 제인의 가정교사 일을 알리는 편지에도 냉담하고, 제인의 유일한 혈육인 숙부의 편지에 제인이 죽었다 답장하면서 제인을 철저하게 혼자인 사람으로 만든다.
그러나 사라는 자신의 남편이 죽을 때 제인을 버리지 않겠다는, 스스로는 저주에 가까운 맹세를 하고 그 맹세를 이행하지는 못했다. 그의 귀신을 보며 붉은 방에 사실 본인이 갇힌 거나 마찬가지인 삶을 살았다. 제인은 나왔지만 자신은 나오지 했던 그 방에.
이 고백을 하는 사라의 보이지 않았던 생이 너무 불쌍했고, 그런 사라를 외숙모라 부르며 용서하는 제인을 존경했다.
"이별이 왜 필연적이지?"
쏜필드로 돌아오는 길에 로체스터를 도운 제인은, 의문의 불이 난 밤 역시 로체스터를 구한다. 로체스터는 두 번이나 자신의 생명을 구한 요정(이라 쓰고 제인이라 읽는다)에게 사랑을 느낀다. 근데 이게 사랑이 맞나 싶은 지점인 게 베르타는 로체스터에게 저주다. 이 작품의 인물들은 운명에 이끌려, 하지 않아도 되는 맹세를 하면서 자신의 생을 스스로 저주의 구렁텅이로 집어넣는다.
편안해야 할 집은 베르타와 이혼하지 않겠다는 맹세로 인해 끝없는 악몽에 가깝고, 그는 집에 자주 돌아오지 않는 것으로 그 모든 것을 외면하는데. 그 가운데 이 집에서 자신을 웃을 수 있게 하고, 구원한 건 제인이니까. 이건 필연에 의한 사랑이고, 제인은 안정을 원하는 로체스터의 피난처였다.
왜 이 시기의 작품들의 청혼은 거의 망한 것에 가까운가(..) 남성은 왜 이렇게 오만하게 나오는가(..)에 대해 망한 것 같지만 망하지 않은 청혼 장면을 보며 생각했는데, '동등'한 것이 키워드였다. 제인은 로체스터에게 함께해달라는 말을 듣고 몹시 화를 낸다. 예비 신부가 있는데 정부 역할을 해달라는 거여서 우리는 동등하다 외치는데, 아마 여기에서 로체스터는 제인의 유연함과 다름에 기대려고 했던 것 같다. 이 장면을 글로 쓸려니까 뭔가 자꾸 웃음만 나는 게... 이 부분은 직접 봤으면 좋겠다.
제인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 보석을 주고 싶어 하는 로체스터는 물질로 제인을 묶어둘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자신의 모든 결함은 숨길 수 있으며, 제인 만큼은 자신에게 돌을 던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 게 분명하다.
언제나 태양이 뜨는 것 같은 붉은 방에 브레타를 속박해 둔 것처럼, 제인은 빛나는 보석과 같은 사랑으로 그 눈을 가려버리면 영영 모를 거라고. 로체스터는 제인과 유럽으로 긴 신혼여행을 떠나서 1년 후 집에 대한 비밀(베르타의 존재)을 이야기해 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제인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간 형태로 그의 입으로 듣게 된다.
결혼식 전날 밤. 제인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로체스터가 하자는 대로 이끌려 가는데, 사실 내내 집에서 들려오는 불길한 웃음소리로 관객은 물론 제인 역시 무언가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 이 집에, 혹은 그 결혼식에 무언가 있으리라는 것.
베일을 꺼내두고 잠이 든 제인의 곁으로 붉은 드레스 혹은 가운을 입은 베르타가 다가온다. 제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지만, 제인은 갈기갈기 찢어진 웨딩 베일을 발견하고 결혼식에 베일을 쓸 수 없게 된다. 베르타가 제인의 베일을 찢었던 것을 로테스터에게 설명하지 않지만, 사실 로체스터는 이 모든 일을 알고 있다. 더 이상의 설명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메이슨의 등장으로 중단된 결혼식.
어쩐지 불안했던 것들은 결혼을 알리는 제인의 편지로 모두 현실이 되는데, 모든 것이 밝혀지자 오히려 담담하게 베르타를 소개하는 우연 로체스터가 너무 황당했다. 자신의 죄로 인해 일어난 부도덕한 일을 정당화하는 자세가 이미 오랜 시간 동안 그 순간이 올 줄 알아서 준비했던 사람 같았달까.
대담하고 당당했던 제인은 자신을 하나의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해주던 쏜필드를 떠나기로 한다.
"나는 황야로 걸어 들어갔어."
안락했던 집, 그리고 사랑을 쏜필드에 두고 제인은 황야로 떠난다. 비참하고 괴로운 길을 홀로 걸어가다 무너져 흐느낄 때, 진아 제인이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서 아직은 살아야 한다고 말할 때, 그 순간 나도 같이 울었다.
이때의 음악사용과 제인이 황야로 떠나는 길을 보여주는 조명은 극호였다. 어두움 속에 빛으로 이루어질 길을 따라가야 하는, 그리고 그 길밖에 없는.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극적인 효과랄까. 이 장면은 '굉장히 종교적'으로 연출된다.
목사가 등장하고 제인은 로우드 학교에서 성서의 교리에 관해 공부하고, 자주 기도하는 장면들이 나오는 만큼 이 극은 종교적인 부분을 배제 할 수가 없다. 성경 속에서 황야는 주로 고난과 고통, 시련의 공간으로 그려지고, 제인에게 펼쳐진 황야 역시 그랬다.
평안하게 사랑하는 로체스터와 남은 생을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던 제인 앞에 브레타와 붉은 방에 나타났고, 마차에 짐까지 놓고 내리면서 제인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성경은 그 황야에서 나오는 인간을 위해 '천국'을 예비한다. 제인에게 천국은 리버스 목사와의 만남이었을까, 아니면 그 후의 공간이었을까. 헬렌이 있는 그 곳일까.
"내 영혼은 여전히 나의 것이었어."
제인이 정신을 차렸을 땐 목사관의 침대에 누워있었다. 도피의 공간을 찾았고, 제인은 여기서 천사 같은 다이애나를 만난다. 다이애나는 상냥하고 다정한, 약간 어리숙해 보이지만 제인을 응원하는 여성캐릭터이자제인과 끝까지 함께하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어책을 거꾸로 집어 들고 읽지 못하는 다이애나는 사랑스럽고 소중한 캐릭터였다. 독일어를 알려줄 생각은 없었던 것 같지만.. 그렇다고 제인은 리버스 목사에게 힌디어를 배울 생각은 더더욱 없었을 텐데.
리버스 목사님.. 목사님은 사실 원작에서도 미친 사람인가 싶은데, 극 속에서는 진짜 앞뒤 다 자르고도 정말 미친 사람 같았다. 이 부분을 극대화하니 어설프게 꿇는 무릎과 그의 달변은 무거웠던 극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것 같았다. 객석에서 웃음소리가 나기도 했고, 이쯤 되니 원작에 그만 얽매여도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쉬운 건 리버스와 로체스터의 이미지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인데.. 리버스와 브로클허스트는 분명한 경계선이 있는데, 리버스와 로체스터는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성격은 다른데 표현이 비슷해 보였달까. 아직 프리뷰인 만큼 리버스의 의상에 좀 더 '성직자'스러운 부분들을 추가하거나 구분되게 해줬으면 좋겠다.
확실한 신념과 목표가 이끄는 사람은 상대의 감정이나 자신의 감정은 정말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서. 달변가이자 웅변가여서 뚝딱거리며 하는 산책과 청혼 아닌 청혼에도 제인이 아주 잠시 고민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니야, 제인! 하고 외치던 제인의 목소리에 나도 제정신이 돌아왔었다. 사랑 없는 결혼은, 타인을 위한 희생과 봉사는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사실 이 부분은 결말의 흐름을 사실상 미리 보여주는 것과 같았다.
떠나라, 제인. 살아라, 제인.
그 베일을 쓰지 마.
제인은 아무튼 달변가(..)와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숙부님에게 편지를 보내고서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쏜필드로 향한다. 사실 이 부분까지도 원작의 결말이 바뀔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 다시 돌아가는 것은 결국 로체스터에게로 향하는 길이었으니까.
로체스터는 제인과 유럽으로 긴 신혼여행을 떠나서 1년 후 집에 대한 비밀(베르타의 존재)을 이야기 하려 했던 것 같은데, 아이러니하게도 1년 후 제인은 이미 밝혀진 진실 앞에 불에 타 폐허가 된 쏜필드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때 이야기하지 않고 감춰두었던 베르타의 이야기를 꺼낸다. 관객에게, 그리고 화자이기도 한 자기 자신에게.
제인에게 붉은방이 가진 의미는 악몽이자 생의 저주 같은 것인데. 트라우마이기도 하고. 베르타는 제인이기도 했고, 제인의 거울이기도 했다. 더 넓은 세상으로, 진취적인 선택을 하던 제인에게 베르타의 공간인 붉은 방은 한계를 뜻했다.
베일을 쓰면 안 돼, 가 아니고 쓰지 말라고 말하는 지점이 의외였다. 베르타가 제인의 그림자, 혹은 제인 자신이라는 부분이 참 서글펐다. 베르타가 과연 정말 제인에게 말을 걸었을까, 혹은 걸 수 있었을까.
베르타의 목소리는, 베르타가 건넨 말은 '제인 스스로 선택'을 하라는 의미였다. 베르타는 제인이 작은 공간 안에 갇혀있지 않길 원했다. 제인은 베일을 쓰지 않기로 했고, 베르타는 그 방과 자신을 파괴한다. 제인이 영원히 떠날 수 있도록, 과거를 반복하는 삶을 살지 않을 수 있도록.
제인의 회상은, 과거는 그렇게 끝이 난다.
극이 시작할 때 제인이 왜 그림을 그려보자고 했던 걸까, 했는데 제인은 마데이라에서 그림 교실을 열어 온전히 자기 자신만을 위한 생을 살고 있었다. 오래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다이애나를 친구로 부를 수도 있었다.
*
붉은 방부터 결말까지가 원작과 가장 다른 부분인데, 이 부분이 완벽한 고전의 재해석이었다.
극을 보고 나온 당장은 굉장히 미묘했다. 원작과 가장 달랐고, 그 집에서 몰래 도망쳐 나오면서 자신을 죽일 수도 있는 베르타를 만나기 위해 다시 그 방으로 간다고? 하고 꽤 여러번 되물었다. 원래 결말처럼 로체스터와 다시 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제인이 기도를 하고 있긴 한데, 분명 종교적 영향을 많이 받긴 했지만 결국 모든 건 제인 스스로 이뤄냈다. 응답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제인은 분명 그 순간에 '혼자'다.
원작의 종교 비판적 자세는 배제되지 않았고, 성장하는 제인의 모습도 삭제하지 않았고, 여성의 역할을 제한하지 않았고, 모두를 이름으로 불렀다.
원작의 제인은 머무를 곳, 집, 가족과 사랑을 열렬하게 원했다. 자신을 불가피하게 밝혀야 하는 상황에는 제인 엘리엇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에어'라는 이름이 가진 의미에 제인은 강한 확신이 있었는데, 연극의 제인은 그저 제인이었다. 마찬가지로 인물들은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불려서 중간에 내가 내용을 잘못 알고 있나? 하고 고민했었다.
이 모든것과 결말을 바꿔낸 지점이 사실 매우 신기했다. 18세기 작품을 21세기로 가져오지만, 제인의 삶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 그리고 고전을 재해석하는 것. 이건 재해석한 창작자의 의도도 중요하지만, 받아들이는 관객인 내가 유연해야만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극이 진행될 수록 내내 제인은 말했다. 나는 당신이 알고 있는 그 제인이 아니라고. 시대 통념과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이 극 속의 제인은 원작의 제인과는 완벽하게 다르다는 것.
제목부터 제인에어가 아닌 '제인' 이었으니까.
그래서 가능하다면 원작을 읽지 않고 극을 봤으면 좋겠다. 제인 에어와 제인은 다른 삶을 살고 있으니까. 극을 보는 내내 원작의 '이 부분'이 없네, 하면서 보던 건 개인적으로 좀 아쉬운 포인트다. 모르고 봤으면 정말로 제인의 삶(이라고 쓰고 어떤 과정이라고 읽는) 자체를 즐기고 나올 수 있었을 텐데.. 책으로 8시간 정도 읽었던 텍스트를 2시간이 조금 안되는 시간 동안 무대 위 작품으로 보는 거 자체는 굉장히 재미있는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