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421 




전화할게 


순간적으로 저 말이 되게 다정하게 들렸어.

강구가 해기를, 많이 아끼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연습실에서 공항으로 가던 그때, 둘은 정말로 친밀한 관계.

어쩌면 진짜 친구가 되었을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고.


극 중에서는 처음으로 강구가 먼저 해기에게 연락하는 거였던 것 같아. 

내일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잠시 후의 미래를 약속하는 거. 

잔인한 느낌도 들고, 애절한 느낌도 들고.





Why Not 


정확히 어떤 지점이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데, 아마 넘버 후반부 쯤? 

바람 소릴 들어봐, 때쯤 이었던 것 같은데. 

해기가 앉아있는 강구 쪽을 보면서 노래하더라고. 


자신의 편지를 강구가 언제쯤 읽을지 알고 쓴 것 같았어. 

강구가 다리 위로 올라갈 걸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래서 바람 소리를 들어보라고 한 것처럼. 


아주 잠깐이지만, 강구가 올랐던 그 다리에 

강구를 보고 있는 해기가 있었어.




그래서 오늘 별로라고 생각하던 그 상황에서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 


극 보는 내내 어리둥절했거든. 합이 안 맞아서. 그리고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애드립 하는 거 좋지. 

조금씩 달라지는 부분들 찾는 게 회전문 도는데 재미 중 하나인데, 

오늘은 정말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생각나더라. 

차라리 모자라게 하지, 하게 할 정도로 극이 늘어져서 좀 지루했어. 


개인적으로 본 페어보다 더 기대했던 크로스 페어라서 정말 아쉬워ㅜㅜㅜㅜ 


아쉽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해기는 해기대로, 강구는 강구대로 감정선이 진짜 좋았는데.. 

보꼬해기, 죠강구 자체로서는 좋은 옷을 입은 캐릭터였는데 

둘을 붙여놓으니까 이게 뭔가, 싶어졌거든ㅠㅠㅠ




난 뭐 모태 양동이도 아니고ㅠㅠㅠㅠㅠㅠㅠㅠ

분명 안좋았는데...


막상 극 끝나고 나서는 별로였는데,

집에 오는 길에 후기 쓰면서 생각해보니까 그래도 좋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밑 후기부터는 조금 긴글이고 약간의 내 얘기가 들어가 있어.




*




초연 때 후기에 썼던 말이 있어. 

마버킷이라는 극이 가진 무게를 변하게 하는 건 강구인 것 같다고. 


강구가 해기에게 마음을 얼마나 주는지, 

얼마나 열었는지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오늘 페어가 합이 맞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먹먹해졌던 이유는 

죠강구가 지금까지 중에 가장 여린 모습이어서였던 것 같아. (내 기준에) 



거기다가 보꼬해기가 지지 않고 같이 소리를 막 지른 센 해기여서? 

강구가 약한데 강한 척 하는 티가 더 나는 것 같더라고. 


사이비 종교에서 그렇게 센 척 하면서도 해기를 먼저 들여보내고, 

하나도 안 무섭다고 하면서 객석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올 때 정말 겁이 많구나- 싶더라. 



나 대신 네가 죽어달라고 해기가 매달리니까 

그 손을 잡고 어쩔 줄 모르는 모습. 

연습실에서 공항으로 향할 때 '전화할게' 하고 나가고. 

소년원에서 나왔을 때 '올 수가 없지.'하면서 세상 무너진 표정으로 걸어가던 그 순간, 해기와 옷자락조차 스치지 않던 거.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준다고 믿었던 사람이 다시는 자기 곁에 올 수 없음을 알았을 때. 



그래서 많은 부분이 별로였어도, 

Why not에서 해기가 강구를 위로하는, 

혹은 곁에 있는 것 같은 그 순간 때문에 

페어가 별로여도 합이 안 맞아도, 자꾸 보고 있는 것 같아.





*



늘 왼쪽에서 보다가 오늘은 오블에서 봐서 해기의 표정이 더 잘 보여서 였을까? 

자꾸 초연이 생각나는 거야. 



너야, 넘버에서 꽤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겨우겨우 표정관리 하고 

너의 시간을 내게 빌려달라고 말할 때. 

쓰레기가, 쓰레기장에서 말할 때. 



초연을 보는 내내 나는 해기에게 혼이 나는, 질책당하는 느낌이었어. 

나는 이렇게 살고 싶어하는데 너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고. 


강구에게 너의 남아도는 시간을 빌려줘, 가 아니고 

그 시간 그렇게 쓸 거면 달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고. 


나에게도 그렇게 살 거면 너의 삶을 줘, 라고 하는 것 같아서 매번 마음이 아팠어. 

그러다가 죽을 용기도 없으면서 

맨날 말만 한다고 할 때는 그 말이 비수가 되어 

강구가 아니라 내 가슴에 꽂히기 일쑤. 


그래서 매번 보러 갈 때마다, 난 아프고 우울해지러 가나, 라는 생각도 했었어. 



삶을 사랑하고, 주위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고. 

빠르게 파괴되어가는 육체와 내달리는 삶을 가만가만 주워담아 건네는 해기. 

사실 이렇게 금방 돌아올 줄 몰랐... 지만, 

이번 재연에는 초연 때처럼 삶을 만져주던 느낌이 안 나서 좀 묘했는데. 


오늘은 재연 들어 처음으로, 

해기에게 혼나는 기분이 들어서 마음이 싱숭생숭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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