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법제도의 허점, 살인자의 인권, 개인이 가지고 있는 편견이 '결정'과 선택에 미치는 영향. 

인간군상 그 자체를 가지고 있는 극이었다. 



극이 시작하고, 배심원단들은 들어와서 무리를 지어 이야기를 나눈다. 

사실 여기서부터 권력 관계와 캐릭터들의 개성이 뚜렷하게 눈에 보인다. 


경비역을 제외한 배심원단의 여성 캐릭터와 남성 캐릭터의 성비는 4:8이고, 

여성 캐릭터의 비율이 낮은 대신에 배심원장이라는 권력을 여성 캐릭터에게 주어진 게 극을 보는 내내 흥미를 유발했다. 


많은 직업군의 사람들이 모여 누군가의 죽음을 결정한다. 





가난한 동네에서 태어났기에 그들은 쓰레기고 당연히 그런 일을 저질렀을 거라는 믿음과 확신에서 시작한 유죄. 


페인트공의 직업을 무시하고, 여성이라고 무시하고,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고 무시하고. 

논리적으로 말하면 똑똑한 척 한다고 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문을 광신도같이 이상한 믿음에 붙잡힌 거라고 말하고. 


온갖 맨스플레인과 젠더 권력이 가지고 있는 폭력이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노출되는데 이게 불편한 만큼 극에서 주는 쾌감이 남달랐다. 


주얼리 디자이너가 자신이 받은 교육은 이런 것이라고 말하고, 

젠더 권력을 뒤집던 부분 - 왜 무죄인지 말해보라고 말하는데 진짜 너무 멋있었다. 



그런데도 폭력이 노출되는 부분에 짜증이 나고 

권력에 대해 여성이 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즈음에 자꾸 극이 상기시켜준다. 


1:11 , 2:10 , 4:8 , 6:6 



무죄와 유죄의 스코어처럼 나열하는 숫자들이 게임 같기도 하고, 

배심원끼리의 감정이 격해져 싸우는 지경까지 가곤 하는데... 


우리는 이기고 지는 게임을 하는데 아니라 한 사람의 목숨이 달린 거라고. 

선택에 책임을 지는 거라고.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준 거라고 하는 그런 뉘앙스의 대사를 하는데, 그 대사가 극을 보는 태도를 바꾸게 했다. 



사실 나 역시도,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후기를 쓰는 동안 이 워딩은 괜찮은가.. 하고 썼다 지웠고. 


단순하게 법정 추리극이 아니고 심리와 인간군상을 극 시작부터 끝까지 순간마다 보여주는데 

기립박수 정말 치고 싶었다.





맨 처음 의문을 제시하던 배심원(한상훈배우)의 캐릭터가 가진 차분함과 집요함. 

그 칼은 정말 유일한 칼일까, 죽여버린다는 소리를 정말 들었을까, 15초 만에 갈 수 있었을까. 



국회의원을 했다는 캐릭터(플북 살걸)와 의문을 제기하는 배심원은 계속 부딪히는데. 

'죽여버리겠다'는 말이 진짜로 죽이겠다는 말이었을까? 하고 되묻고

그 캐릭터의 입에서 그 말이 실제로 나온 그 순간의 정적, 그리고 의문의 쾌감. 



자기 아들을 대입해서 그 소년은 무조건 유죄라고 말하던 아버지가 

자신의 마음에 박힌 대못을 소년 아버지의 가슴에 박힌 칼이라고 생각하는데 

'당신의 아들이 아니에요' 하고 말하던 그 직전 공연장의 공기가 너무 이상했다. 


그에게서 처음에 등을 돌리고 있다가, 점점 그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사실 가장 필요한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또 이야기하게 만들고.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어떠한 선택을 하게 하는 것. 



프리뷰공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극이었다. 

간만에 진짜 좋은 극 보고 나왔다! 하고 신나게 떠드는 후기를 쓴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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