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와 절망 넘버가 반토막이 나면서 변화가 생겼다. 괴물의 서사에 인간에 대한 일말의 애정이 사라졌다.


생명과 과학이라는 주제가 2막에 들어서 존재를 감추고 빅터의 인생만을 조명한다. 이건 괴물이 앙리가 아니라는 증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재연보다 조금 더 유하게 드러나는 닫힌문 이라고 해야하나.


초,재연에서 엘렌이 다시 살아나 자신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실험실을 파괴하던 괴물은 인간성을 버리고 철저하게 복수를 하길 원하는 존재로 변모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빅터에게 이름이 없는 '너'라는 존재에서 완벽한 괴물이 되었다. 빅터의 삶을 망가뜨린 온전하고도 완벽한 저주 그 자체의 존재.


의사였던 앙리가 살리려던 그 생명에 대한 존중이 없는 괴물. 자신의 복수를 위해 인간을 이용하고 죽일 줄 아는 자신이 싫어하던 그 인간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아마도 인간에 대한 분노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겠지만.



빅터



- 빅터 프랑켄슈타인도 결국 보잘 것 없는 인간인 걸 확인하고 싶었어?


민빅터가 가지고 있는 노선이 이 대사 그 자체였던 것 같다. 무지하고 약한 인간들에게 강한 신체와 영원한 생명을 주고 싶어하는 '또 다른 신' 같은 느낌. 엘렌이 '앙리의 머리가 필요한거니?'하고 물었을 때, 아주 작은 마음의 소리를 들켜 잠시 침묵하는 것 같아 보였으니까.

나는 왜, 마지막에 그가 진실을 붙잡게 만들었던 것은 자신의 신념 같았겠지만 실은 저주의 일부였다. 빅터는 파편에 찢길지라도 그 저주에서, 거울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빅터가 말하는 저당잡힌 위대한 이상은 신의 섭리에 반하는 '생명창조'이다. 그는 자신을 위해 희생한 앙리의 머리를 '실험'을 위해 소중하게 감싸안고 돌아온다.


빅터의 마지막 실험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저주는 이번에도 그의 삶에 작용했다. 줄리아의 강아지를 살려내고, 앙리의 머리를 한 그것이 살아나게 만들었으니까. 그리고 그는 앙리와 룽게를 잃고 나서 위대한 이상을 모두 잊었다.


1막에서 자신만만한, 신과 맞서는 위대하고 강인한 연구자이자 군인이고, 저주의 전복자였던 그는 2막에서 앙리와 룽게를 잃고 3년을 보잘 것 없는, 불안에 떠는 인간이 된다. 유약한 인간이 되어버린 민빅터는 북극에 자신이 가는 이유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옷을 입혀주는 연출조차도 이해할 수 있게 되어버렸다. 운명이 이끌어가는대로 끌려가는 그저 그런 평범한 인간.


- 잘했어, 앙리. 앙리가 생명을 얻었어.

- 그렇게 부르지 마

날 앙리라고 부르면 너의 죄책감이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기라도 하나?


워터루에서 빅터가 처음 앙리를 부르던 그 목소리가 너무나 생경했다. 마침내, 드디어, 하는 기대감도 깃들어 있었지만 앙리를 죽음에서 구해냈다고 하기에는 빅터 자신이 너무나 절박해보였다.

그런데 그 목소리를 북극에서도 들었다. 빅터에게 앙리의 존재는 도대체 뭐였을까. 정말 친구였던 적이 있었나. 가장 뛰어나고 유용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기에 함께하길 원했던 건 아닐까. 단순한 연구의 조력자에 불과했던 걸까.

마지막에 빅터가 앙리를 계속 불렀던 이유는 3년간 그를 잃고, 혹은 잊고 살았던 죄책감의 일부였을까. 아니면 도처에 널린 죽음을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버티게 한 것이 괴물이었음을 알았기에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것일까.

실패한 진화의 결말. 빅터는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워서 평범한 인간이 되어버린 자신을 보라고 앙리를 원망하듯 불렀던 건 아닐까.



괴물 그리고 앙리



- 하지만 창조주여 그 전에 내 얘길 먼저 들어. 내가 겪은 세상, 내 눈물을.


괴물은 분명 앙리의 일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괴물은 빅터의 앞에서 앙리이기를 거부한다. 괴물이라는 이름 외에 자신을 지칭했던 건 앙리 라는 말 뿐이다. 앙리, 라는 말이 들려올때 자신이 느낄 수 있었던 건 신체의 고통뿐이었다. 머리가 깨질듯한 두통이나 실험일지를 읽던 자크의 목소리와 함께 가해지던 고문. 괴물은 그 이름에 진절머리를 내고, 입밖에 내는 것 조차 괴로워보인다.


머리를 부여잡고 격투장에서 싸움을 피하던 건 분명 괴물이었고, 앙리는 아니었다. 인간이 어디까지 상처를 주고 타인을 괴롭히는지 확인하듯이, 혹은 자신이 도대체 어디까지 해야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하나의 액션을 취하고 에바를 보고. 자크를 보았다. 살기 위해서 싸우는게 아니라 확인 받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앙리의 신념이 괴물에게 그대로 깃들었다고 표현해야 할까. 자신을 이루는 것이 누구인지, 자신이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지 그는 실험일지의 내용을 듣기 전에는 몰랐다. 그는 앙리의 머리를 취하고 있지만 앙리의 기억을 갖는 것이 자신의 의지였던 적은 없다.

그는 인간을 사랑했다기보다 그들에게 '쓸모'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았다.


- 한잔에 슬픔 담아

- 그곳에는 슬픔도 없어


괴물이 참을 수 없는 그 이상의 슬픔. 앙리에게 가득 담겼던 슬픔의 잔이 오버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빅터와 앙리의 생엔 이미 정해진 양의 슬픔과 눈물이 분명 존재했으리라. 어린 괴물은 앙리의 고독과 고통까지 다 견뎌낼 수 없었다. 슬픔을 덜어낼 곳은 북극이었다.

네가 내게 전가한 슬픔을 이제는 네가 맛볼 차례야, 빅터.


- 안녕


쟈크가 입에 달고 살던 말은 '반품'이었을거고. 격투장에서 까뜨린느를 향한 안녕은 보답받지 못했고, 까뜨린느는 그를 짓밟았다. 그들은 괴물을 쓸모없다 판단하고 버렸다. 빅터에게 자신의 고통을 전가하기 위해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괴물이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인간에 대한 일말의 애정은 격투장에서 울부짖으며 모두 버렸으리라.


상처 넘버의 아이가 누구일까 하고 고민했었다. 오늘의 상처 속 그 호수는 괴물이 처음 꾼 그 꿈의 일부 같았다. 목 언저리의 상처를 만지는 괴물은 앙리의 모든 기억을 알고 있었다. 재연에는 그 해석마저 닫혀버린 기분이었지만, 괴물은 아이를 호수로 밀며 앙리의 기억과 인간성을 버린 것 같았다. 난 괴물을 부르기 전 그의 안녕은, 인간에게 그리고 동정심을 가지고 있던 자신에게 하는 작별의 인사 같았다.


- 나는 불행하기에 악하다. 악하기에 복수를 원해.


자신이 불타는 격투장에서 홀로 걸어나와야 했던 이유를 괴물은 알고 있었다. 빅터의 유령이라고 불리던 저주. 빅터 생에 불 속에서 일어났던 시작되었던 그 저주. 자신이 불 속에서 걸어 나가면 북극에서 빅터가 어떻게 울지, 울부짖을지, 그가 어떻게 남겨질지 괴물은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복수만을 위해 북극으로 갈 결심을 하고도 무릎을 끌어안고 우는 괴물은 너무나 서글프고 서롭고 외로웠고 아팠다.


도망자의 괴물은 자신의 탄생보다 홀로 살아있는 자기 자신만을 원망했다. 격투장에서 자신이 살아있는 이유가 '쓸모' 때문임을 알게 된 순간 괴물은 변모했다. 괴물은 불행해지며 인간성을 스스로 버리고 악해졌다.


괴물이 룽게를 죽이던 순간 그것의 모습을 한 앙리 또한 빅터에게는 죽은 존재였다. 앙리는 단두대에서 목이 잘려 빅터 대신에 죽었고, 괴물은 빅터의 손에 죽었으나 존재조차 하지 못했다. 그가 빅터의 이름을 세번 부른 순간이 되어서야 그는 괴물을 보았다.

그는 절대 앙리일 수 없지만 빅터에게는 앙리였다. 괴물은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괴물의 바람대로 빅터 역시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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