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129 마이버킷리스트
이규형 이지호
1. 사라지는 시간
인생의 밑바닥을 헤매는 양아치 소년과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소년.
죽음을 원하는 강구가 삶이 절실한 해기를 만나며 생긴, 그와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
사라져 간 시간에 대한 이야기.
2. 살아만 있으면 사는데 의미 같은 거 없어도 괜찮잖아.
- 아저씨 아들이나 무병장수하라고 하세요.
악의없는 힐난조의 말이라고 하지만 비수같은 말.
그냥 교도관 이었다면 별 문제 없었을텐데, 해기의 아버지.
뼈 암에 걸린(...) 시한부 아들을 둔 아버지에게 강구의 말은 아프게 느껴졌다.
쇼케이스때부터 저 대사가 목에 걸린듯 불편한 이유는 그가 그냥 교도관이 아님을 알아서 였을까?
아니면, 저 대사가 누군가에게는 영향, 혹은 압박으로 다가오는 대사 라서 였을까?
3. 왜 너 같은 쓰레기가 아니라 나야??
- 나 대신 네가 죽어. 너 죽고 싶다며.
- 그럼 그 병 나줘.
- 나 억울해. 나 살고 싶어.
그들은 계속 이런 식이다.
뭔 극이 이렇게 무거워. 극이 진행될수록 공기가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4. 너처럼 죽고 싶어하는 인간은 살려주면서 왜 나는?
(플라시보 프로젝트라며... 쇼케이스 때만 해도 이런 느낌 아니었는데..?)
정확한 대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해기는 강구에게 설치지 말라고 말한다.
죽을 용기도 살 용기도 없는 주제에 목숨가지고 장난치지 말라고.
너처럼 죽고 싶어하는 인간은 살려주면서 왜 나는 몇 개월 후에 죽어야만 하냐고.
너는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삶이,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데.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다.
칼로 찌르고 찔러서 한쪽이 다시는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드는 대화의 연속.
4. 결핍?
온전치 못한 가정. 그로 인해 부족한 부모의 사랑. 가정형편. 어긋난 성격.
그런데, 그는 도대체 무엇에 결핍되어있었던 걸까.
사랑? 친구? 가족? 너무나 많은 것이 결핍되어있는 강구.
그런 강구에게서 극 중에서 가족을 완전히 앗아가는데 인상을 찌푸렸어.
이렇게까지, 강구를 밑바닥까지 가게 하는 이유는 뭘까.
그런데, 넌 그것들이 없어도 살 수 있잖아. 살아가잖아.
난 가지고 있는데 살 수가 없어, 하고 말하는 것 같은 해기.
강구가 더 불쌍하고, 해기가 더 처절하고 절박해보이고...
5. 노란 편지 봉투
그 언젠가 읽어본 적이 있다. 노란 편지 봉투는 이별을 뜻하는 거라고.
풍문일 수도, 아니면 미신일 수도 있는 그 노란봉투가 해기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 말해! 내일도 온다고.
저 말에 겨우 멈춰가던 눈물이 후두두 떨어졌다.
감정에 받쳐 절규하는 강구때문에, 그런 강구의 손에 자꾸 편지를 쥐여주는 해기 때문에.
너 나오는 날 마중 나오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제, 우리 헤어져야해.' 하고 말하는 것 같아서.
6. 보고 있어, 이해기?
자신의 불행에 취해 타인에게 무관심했던 강구가 종내에는 울지 않고 그를 보내주는 것.
극이 시작한 후 해기가 관객석 어딘가에 앉은 이유를.
해기가 약 올리듯 주위를 뱅뱅 돌지만, 강구가 반응하지 않았던 이유를.
아니. 극이 시작하자마자 알았는데 외면하고 있었던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직면하고 나니 또 눈물이 후두두.
7. 넘버
헐, 런, 에스프레소 더블, 갈증
이 넘버들이 아니었으면 극의 무게에 눌려 공연장을 뛰쳐나올 뻔 했다.
근데 중간중간 영어 들어가는 넘버 들으면 갑자기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특히.. 섬데이? 원데이? ... 영어 들어가는 몇몇 넘버 어떻게 안되나ㅠㅠㅠㅠㅠ
무거운 이야기만 써서 그렇지.. 이벤트도, 웃긴 포인트도 배우들의 애드립도 많다.
개불도 찾고 굴도 깨고 세바스찬에게도 물리고 클럽에도 가고 춤도 추고..
네. 좋습니다 (feat. 쇼케이스 화왕)
8. 개츠비 페어
- 호스트빠 같은데 가라고? 나 미성년자야
- 충남 서산 출신 같이 생겨가지고!!!!!
- 뀨생파
꼬깔모자 쓰고, 생일케이크 받고.
이거 쓰니까 개츠비 생각난다니까 죠가 한마디 하라고.
뀨 : 승우야
죠 : 승우 아닌데?????
뀨 : 돈이 곧 권력이고 돈이 곧 생명입니다.. 네..
9. 유잉육종
죠해기가 다리 언저릴 짚고 절뚝거리는 이유가 뭘까...
유잉육종 [ewing sarcoma, ─肉腫]
1921년에 James Ewing에 의해서 처음 기술된 질환.
근육에 발생하는 희귀암인데 뼈에 발생한 경우에는 예후가 나쁘다.
팔이나 다리에 압통이 오기도 하고, 종양이 다리로 오면 절뚝거리게 되고.
근육통이던 부분이 점점 딱딱한 덩어리가 되고, 갈비뼈를 침범하면 호흡곤란이 온다는데..
죠해기가 섬뜩하리만큼 잘 표현해줘서 쓰러져서 약먹고 뒹굴때 진짜 심장 떨어지는 줄.
10. 그리고
많이 울었고, 웃기도 했으면서도 끝 여운이 이상했어. 왜 극이 불편한 느낌이 들까?
처음 극이 올라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많이 기대했고, 쇼케이스를 다녀오고 나서도 들떠있었어.
쇼케이스 때까지만 해도, 아니 사실 악몽을 들을 때만 해도 이런 기분일 줄 몰랐는데ㅠㅠㅠㅠㅠ
목 언저리에 뭐가 걸린 듯해서 침 삼키는 것도 힘들어졌고...
분명 웃고 울고 기분 좋게 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할 여지가 많은 극일 줄이야.
자신도 해기처럼 버킷리스트를 만들며 살겠다고 말하는 강구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극장에서 나온 이유가 뭘까 계속 생각해 봤어.
누구를 위한 플라시보 프로젝트?
극이 다 끝나고, 꽤 한참을 곱씹어 본 결과 극이 말하고자 하는 방향성을 뜻하는 말임을 깨달았어.
그리고, 리플렛에 쓰여있는 한 문장이 눈에 들어오더라.
'내가 사라져도 나란 사람의 삶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며 그들의 가슴에 있다.'
... 삶을 이야기 하는 건 중요하지.
그런데 나에게는, 이 극 속에서의 강구는 평생 해기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이야기처럼 들렸거든.
마이버킷리스트의 작품 속, 강구에게는 정말 잔인한 말이잖아.
'해기가 사라져도 해기의 삶은 강구에게 영향을 끼치며 강구의 가슴에 있다.'
타인의 인생에 나를 남겨두고 가는 것. 다른 이의 생에 나의 무게를 얹는다는 것.
처음엔 많이 꼬였어. 기분이 나쁘고, 불쾌하기까지 했어.
병으로 죽게 된 해기의 삶을 강구에게 얹어주겠다는 건가?
내가 과연 '다른 이의 생에 나의 무게를 얹는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보기도 했어.
극 중에서 해기가 말하잖아. 아빠와 함께했는데 추억으로 남기려니 아팠다고.
더 좋게, 아름다운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거잖아. 아름다운 추억, 함께 공유한 시간, 머물렀던 장소들.
'영향' 이라는 건 그런 좋은 기억들을 지칭한 말인지도 모르지.
콘서트가 모두에게 '영향'을 미쳤으면 해서 '아무도 안 울었으면 좋겠어, 적어도 그 날만큼은' 하고 말했던 거겠지.
그런데 후기를 쓰면서 냉정을 좀 되찾고 작품 밖에서 보니까, 극이 하려던 말은 정말 간단한 거였던 것 같아.
공익성을 띄고 있는 이 뮤지컬이 말하고자 하는 걸 나는 까먹고 있었던 거야.
만약, 강구가 그 옥상에서 마지막 노래를 부르게 되었더라면.
남아있게 된 해기의 아버지, 교도관은 어떻게 살았을까..
갑자기 떠나버린 당신의 삶이 누군가에게 미칠 그 영향을 생각해보라는 거였던 거겠지.
11. 마이 버킷 리스트
음원 공개되고 나서, 쇼케이스에 다녀오고 나서도 역시 진짜 좋았던 넘버.
극 중에는 해기, 강구 둘 다 부르지만 혼자서 한 곡을 다 부르는 일은 없었다.
사실 둘이 한번씩은 끝까지 다 불러주길 원했는데ㅠㅠㅠㅠ
마지막 마이 버킷 리스트에서는 강구가 먼저 부르고, 해기가 뒷부분을 부르는데 가슴이 철렁했다.
과거의 실수들을 모두 노트에 적어보기
그 모든 실수들을 모두 다 용서하기
해기가 강구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해기와 강구가 지금의 나에게 다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아직, 아무것도 늦지 않았고 모든 건 이제서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유독 많이 울었다.
극 중에 보통 울컥, 하기만 하는 편인데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렀다.
12. 무대
무대가 길어도 너무 길다....
A블럭 중앙이었는데도 오른쪽 끝을 보려면 고개를 한참을 돌려야 한다.
B블럭 어드메에 있는 세바스찬에게 물리러 가는데도 고개를 엄청 꺾어야 뭐하는지 보이고.
양쪽 끝 동선이 있을때는 잠시 고개 돌리기를 포기하고 소리만 듣기도 했다.
쇼케이스 때도 느꼈지만 이건 상상 이상.
남은 티켓을 놓을까 말까, 몇 번은 더 보고 싶은데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극이 왜 불편했을까 곱씹으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후기를 밤새 썼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