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을 기다리며 - 워터루, 전쟁 같은 빅터의 삶
워터루 넘버는 빅터의 삶 전체를 꿰뚫고 있다.
빅터는 엄마의 죽음으로 첫 상실을 겪었다.
불 속에서 엄마는 다시 죽었고, 빅터는 그 모습을 이유야 어쨌든 지켜봐야만 했다.
하늘을 뒤덮는 연기, 빅터는 다시는 엄마를 만날 수 없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하늘을 뒤덮는 공포와 피 냄새 명분도 사라진 전쟁의 최후
불행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빅터의 삶은 치열한 전쟁터가 되었다.
빅터의 아빠는 빅터를 구하기 위해 불타는 성에 뛰어들었다.
빅터는 소중하게 여겼던 줄리아의 강아지를 살리고, 숙부로부터 쫓겨나 독일로 유학을 간다.
상실을 또다시 겪고 싶지 않았던 빅터의 ‘부활’이라는 명목하에 이루어졌던 실험들은 제네바에서 끝이 나야만 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서로를 죽이고 죽였다.
빅터가 그토록 괴로워했던 ‘상실’과 ‘죽음’. 죽음의 냄새가 천지에 널려있었다.
빅터는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생명의 창조. 새로운 구원자가 되려 한다.
전쟁은 빅터의 ‘부활’이 ‘생명창조’가 되는 커다란 날개를 달아준다.
인간의 야망이 인간을 죽이네 분노한 하늘이 심판하리
신마저 버린 이 세상 악마가 춤을 춘다
빅터의 야망, 혹은 꿈은 주위 인간을 죽게 한다.
그의 연구의 조력자 앙리는 어떤 명분이든 결코 신의 심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앙리 역시도 그의 야망이 가져온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가 창조해낸 생명은 신의 섭리를 거스르는 존재였다.
금기시된 생명창조를 빅터가 해내고 만다.
신은 눈을 가렸다.
아니, 신의 눈은 천둥·번개로 가려졌다.
신은 빅터의 삶에 있어서는 방관자의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괴물에게 숨을 불어넣은 그 이후부터는 철저하게 빅터의 인생을 파괴한다.
빅터의 삶은 신의 심판의 연속이었다.
괴물이 신의 심판자의 모습을 띠는 이유는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신의 영역에 발을 들인 빅터에 대한 신의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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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 써두었던 글을 이제서야 꺼내본다.
정말 오는구나, 상처받은 가엾은 나의 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