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415 세일즈맨의 죽음 







너무 현실적이어서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 


이런 작품이 있다, 라는 것과 간략한 시놉만 알고 있었고 

토월에서 처음, 텍스트와 무대로 만난 <세일즈맨의 죽음>이었다.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순간도 지루하다 느끼지 않았던 신기한 극. 


1949년의 희곡이 2016년의 현재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는 게 너무 무서웠다. 

대공황 이후의 미국과 지금 2016년의 대한민국. 


그 선에서 시작했던 이야기는 가족에 대해, 그리고 그 개개인에 관한 이야기였다. 

플북을 먼저 좀 읽어볼 걸,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오히려 사전정보 없이 극을 봐서 더 닿는 부분이 많았던 같다.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 소리칠 때는 약간의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로먼 가족 모두가 아픈 이야기여서 결국 2막의 후반부 내내 울고 말았다.




*



극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든다. 


'아들의 성공=행복'이라는 수식을 가지고 있는 윌리의 가치관과 삶은 

현재와 과거에서 다 나오고, 극을 이끌어가는 큰 스토리가 된다. 


과거의 로먼가족은 풋볼 유망주였던 비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과거는 밝은 조명 덕에 나무에 가득 햇살이 비추고 

밝고 쾌활한 가족의 분위기와 더불어 로먼가족의 영광스러운 시절을 재현한다.


과거는 당연히 그렇게 될거라는 '믿음'이 보여서 

비프의 성공은 자연스러운 순리로 보이기까지 한다. 


현재는 고통스럽고 절박하고 처절하다.


윌리, 린다, 비프, 해피. 

가족이지만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는 개인인 그들은 서로에게 솔직해지지 못한다.

상처줄까봐, 내 죄가 드러날까봐, 날 사랑하지 않을까봐,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까봐. 







죄책감 



윌리의 망상과 정신분열의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죄책감'이 아닐까 싶었다. 


비프가 수학 F를 받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아버지인 윌리에게 달려갔을 때 

외도 중이었던 윌리. 


외도를 목격한 비프는 집에 돌아와 운동화를 태우고, 자신의 앞길에 대한 이정표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윌리는 비프와 싸움 같은 대화의 마지막에는 '그래서 나 때문이라는 거냐?'라는 질문을, 혹은 대답을 붙인다. 


아들의 인생을 망쳐버린 것이 그때의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자신이 마지막으로 남기는 '돈'이 그 죄책감을 씻어 줄 거라고 생각하며 

자살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어버린다.






죄책감을 언급하게 되면 사실 해피가 제일 불쌍하기도 한 게, 


부모가 너무 형인 비프 위주로 살아서 단 한 번도 아들로 인정받는 부분이 안 나오고 

아빠인 윌리와 같은 노선(과장과 허영)을 밟고 있는 게 눈에 보이는데 

그런 해피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다. 


해피의 앞에서 윌리는 '비프가 날 사랑했어'라고 말하는데, 

그 말을 듣는 해피의 표정이 너무나 아팠다. 


마지막 순간까지 인정받지 못하고, 가족을 화목하게 하려고 애를 쓰고, 엄마를 상처받지 않게 하려 자신을 포장하고 또 포장하고, 

윌리가 자신의 보험금은 린다와 비프가 쓰기를 바라며 자살했으니..







사랑 



극 내내 윌리는 비프와 해피에게 많은 포장지를 씌운다. 


윌리를 보고 있으면 그가 하는 말이 모두 진짜인 것 처럼 믿게 된다.

비프의 무너짐도 사실 이 포장에서 시작된다. 


그가 만들어낸 모든 허상과 비프와 해피의 포장지도 물론 강렬하게 남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하나가 '모든 사람이 날 사랑해' 였던 것 같다. 


자신의 보험금으로 비프가 더 크고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하며 

마지막에는 '비프가 날 사랑했어'라며 자신의 꿈을 실현하러 가는 윌리. 




사실, 극 중에 가장 두드러지는 건 두 아들의 엄마를 향한 마음이다.

천륜을 어긴다는 게 아니고, 린다를 기쁘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니, 더 정확히 하자면 비프는 린다가 상처받지 않게 하려고 내내 노력한다. 


시작은 비프의 인생이 뒤바뀐 윌리의 외도를 직접 목격한 날이었다.

자기 자신의 삶은 망가졌을지언정, 린다만큼은 그 사실을 모르게 하려고 비프는 내내 애를 쓴다. 


애를 쓴다, 라는 말을 선택한 이유는 

비프가 윌리의 '위선'을 점점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게 극 후반부에 드러나기 때문인데 

윌리가 린다에게 '내 말 끊지 마' 라고 소리를 지르자 '엄마한테 소리 지르지 마' 하고 폭발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제발 내가 당신의 위선을 말하지 않게 해' 라는 절규가 윌리에게만 들리는 것 같았다. 


비프는 린다를 위해 외도를 숨겼고, 끝까지 린다의 앞에서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채 우는 린다를 아무 말 없이 안아준다. 






윌리, 린다, 비프, 해피. 


모두가 '자기 자신' 그 자체가 될 수 없었고, 

서로에게 솔직해지지 못했던 이 이야기에서 

비프라는 캐릭터가 더 날 아프게 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남겨지는 게 싫어서 떠나려 했는데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윌리의 무덤 앞에 남아있게 된 모습때문이었다. 


34살의 나이에 머무르지 못하고 늘 떠나야 하고, 아무것도 이룬 게 없고. 

이번엔 마음 잡겠다고, 정신 차리겠다고 말하는 게 

불확실하고 정착하지 못하는 나를 보는 것 같아서, 비프가 그냥 나 자체인 것 같아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래서 비프가 윌리 앞에서 제발 진실을 말하자고 이야기할 때 마음이 아팠다.




윌리를 다독이면서 넌 한푼짜리가 아니야, 라고 말하고 싶었고,

비프에게 넌 실패해지 않았어, 라고 말하며 안아주고 싶었고,

누군가 나에게 제발 그렇게 말해주길 바라며 극장을 나왔다.




*





본문 후기에는 안 썼는데 사실 가장 먼저 눈물이 터졌던 건 찰리의 대사 때문이었다. 


윌리가 돈이 필요하면 늘 회사로 찾아가고 그러면 돈을 주고, 밤에 카드게임도 같이 해주고. 

직언을 해주고 일자리도 주겠다고 말하고, 막말하는 윌리를 그래도 감싸 안는 진짜 친구인데 

찰리의 대사가 자꾸 마음에 박히더라고. 


- 이 세상에서 가치 있는 건 팔아먹는 게 있는 것들뿐이라고. 

- 왜 모두가 자네를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 어느 누구도 죽는 게 나은 경우는 없어. 


윌리의 가치관과 삶을 끊임없이 뒤집어주려는 사람이기도 하면서 

그런 그를 위로하고, 또 어떻게든 살고 견디게 해주려는 사람 같아 보이더라고. 



그 벼랑에서 찰리의 손은 과연 윌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싶었다. 

일자리를 잃었고, 친구에게 돈을 빌리러 갔고, 당연하게 돈을 건네며 일자리를 주겠다는 친구인 찰리.




나는 이상하게도 세일즈맨인 윌리의 삶이 나와 동일시 되어있는 것 같고, 

또 비프의 생활방식과 삶 역시 나 같아서 극 내내 힘들었던 것 같다.


자식들 앞에서만큼은 단단하고 싶은 윌리를 보며 내 부모님을 떠올렸고, 

허공에 매달려있던 그의 육체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를 벼랑으로 몬 건 비프지만, 비프 역시 벼랑 끝에 매달려 있고. 




165분이라는 시간이 체감상 1시간 정도로 느껴질 정도로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탄탄한 대본이 있고, 이미 검증된 작품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프리뷰였는데도 배우들의 감정선이 너무 탄탄하고 이미 완성되어있는 캐릭터들이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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